▲ 또 새해를 맞는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간다. 고달프고 힘든 인생이지만 소소하고 범상한 일상에 새삼 감사하며 2018년이라는 이름 앞에 또다시 희망의 등불을 내건다.

그땅은 어느 문중 소유였다. 거기서 농지를 관리해 줄 사람을 찾던 중 아버지에게 연줄이 닿았다. 소도시 단층 양옥이 가진 것의 전부였던 아버지는 부동산으로 빚 청산을 했다. 집 담보 대출금과 여분의 빚까지 갚고 나니 노쇠한 몸과 반평생 생계를 이어준 표고목만 남았다. 버섯 재배장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참나무 원목 옮길 곳도 알아봐야 했다. 아버지가 허물어져가는 농가로 들어간 건 천 평의 묵정밭이 딸려 있고, ‘일 년에 쌀 한 말’이라는 임대 조건 때문이었다. 문중 땅이라 매매할 일은 없을 거란 말에 아버지의 한숨은 가라앉았다.

칠순의 어머니는 더 억척스러워져야 했다. 진흙을 이겨 회벽 깨진 곳을 땜질하고, 아궁이에 불을 때 방으로 연기 새는 델 찾아 메웠다. 흙이 떨어져 내리는 벽에 한지로 벽지를 대신했고 문살문에도 창호지를 붙였다. 집이라는 틀만 갖춘 곳에서 할 일은 태산이었지만 아버지는 거의 손을 보태지 않았다.

표고버섯 재배 일은 아버지가 한때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방편이었다. 주왕산이나 학가산 기슭에서 표고버섯 야외 재배를 했던 때나, 고향으로 돌아와 하우스 재배를 했을 때도 아버지에게 가족은 부록 같은 거였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께 이런 삶을 어떻게 참아낼 수 있었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나와 동생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아꼈다. 자식이 운명을 옥죄는 구속이었던 것이다.

농가로 친정을 옮긴 뒤 그 첫겨울을 잊을 수 없다. 한파를 걱정해 졸졸 흐르게 해둔 물이 그대로 얼어붙어 고드름이 되었다. 단열 안 된 방은 장판이 시커메지도록 장작을 때도 아랫목만 뜨거웠다. 냉랭한 방 안 공기에 눈알까지 시려오면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래도 추위는 쉬 가시지 않았다. 어머니가 새벽잠을 깨 처음 하는 일은 방을 다시 덥히는 거였다. 이때 솥에서 끓인 물을 퍼 얼어붙은 그릇들과 수저를 녹였지만 돌아서면 그릇에 살얼음이 낄 만큼 매서운 날씨였다. 어머니는 빨갛게 얼어 둔해진 손으로 아침상을 차렸다.

부모님의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당시로선 방법이 없었다. 친정 동생이 서투르게 손댄 사업이 IMF 때 부도나면서 사채까지 끌어다 썼고, 이 과정은 부모님이 낯선 이의 땅에 둥지를 얹는 한 원인이 되었다.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대출해 동생에게 줬던 나도 돈 갚을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친정 일로 남편 볼 낯이 없었던 나는 방문교사 일을 시작했다.

“어르신, 석 달 말미 드릴 테니까 이사할 데 알아보셔야겠니더.”

한동안 낯선 이들이 농가를 둘러보더니 임자가 나선 모양이다. 문중 땅이라서 팔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십 년 만에 ‘팔자’로 합의되었다고 했다. 긴 세월 배려해줬던 그분들의 뜻을 따라야했지만 나이 팔십에 또 어디로 가야 하냐며 아버지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모아둔 돈이 없었다.

아버지가 몸을 의탁한 농가의 지붕을 수리하려다 다친 게 원인이었다. 사다리를 오르던 중 등 쪽으로 떨어지면서 못 빼기 망치에 찔려 간 파열이 되었다. 동내 병원 응급실에선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터질듯이 배에 피가 차오른 아버지를 보며 죽더라도 수술대에 눕혀봐야 후회 없을 거라던 어머니, 대구의 D병원으로 구급차는 달렸다.

의사는 경과를 봐야 생사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중환자실의 아버지 모습은 사람 형상을 한 로봇 같았다. 가느다란 관들을 코와 입, 양어깨며 옆구리, 등에 꽂고 관 밑으로는 주먹만한 플라스틱 통들을 주렁주렁 달았다. 몸에서 검고 노랗고 붉은 액체들이 끊임없이 빠져 나왔다. 아버지는 인공 담도 삽입 수술을 추가로 받고 두 달 만에 퇴원했다. 목숨은 건졌지만 천만 원의 빚을 졌다. 외딴 농가의 삶은 그 걸 지워나가는 시간일 뿐이었다.

아버지는 이삿짐 싸야 한다는 걸 집을 비워야 할 즈음에야 자식들에게 알렸다. 몇 해만 기다려주면 그 땅을 살 테니 팔지 말라고 버텼던 것이다. 급하게 집을 구하는 건 어려웠다. 버섯재배가 생업이라 한옥처럼 마당 있는 집이 필요했다. 가격과 위치, 이삿날이 맞는 ‘입에 맞는 떡’은 귀했다.

지은 지 오래되었지만 작은 방 세 칸과 마루, 입식부엌과 목욕탕을 갖춘 한옥을 샀다. 방문수업을 해서 얼마간 돈을 모은 내가 그 일을 맡았다. 백발의 부모님은 이제 집 걱정 안 해도 된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좁으면 어떻고, 낡았으면 어떠냐. 마음 편히 누울 수 있는 내 집이 최고지.”

혼잣말을 하는 아버지의 젖은 목소리가 안방에서 흘러나오고 곧이어 코고는 소리가 오랜만에 한가하다. 잠을 설치곤 하셨다는 마음의 병이 조금이라도 치유되셨으면 한다.

이사 후 첫봄, 제비 한 쌍이 날아들어 처마 밑에 집을 지었다. 부모님의 둥지에 세를 든 작은 손님들, 임대료가 ‘해마다 다시 온다는 약속’임을 알까?

마당을 낮게 날며 재잘재잘 지저귀는 소리가 평화롭다.

▲ 조미순씨

■ 조미순씨는
·2000년 <에세이 문학> 완료 추천
·울산문인협회 회원
·울산수필 회원
·에세이부산 회원

 

 

 

 

▲ 이혜진씨

■ 이혜진씨는

·울산한마음미술대전 우수상·특선 
·부산 대한민국 미술대상전 최우수상
·대구삼성현미전 특선 
·대구 아트페어 개인부스전 2회, 개인전 1회
·울산수채화협회·울산사생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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