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를 주는 과학·기술에 내재된 위험은
우리사회의 다양한 사고와 재난 초래
과학자로서 공익 우선의 과학을 되새겨

▲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2018년 올해는 황금 개의 해라고 한다. 10개의 천간 중 황색을 의미하는 ‘무(戊)’와 12개의 지간 중 개를 의미하는 ‘술(戌)’이 합쳐진 무술년이 되기 때문이다. ‘무’는 ‘무성하다’는 뜻을 가진 한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무’자가 들어가는 해는 역사상 국가적으로도 국운이 상승했다고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668년, 고려가 건국된 91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5년이 각각 무진년, 무신년, 무자년이었고, 서울올림픽과 평창올림픽을 개최하는 해가 각각 무진년과 무술년이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명이 있으면 암이 있고,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듯이 무술년에 좋은 일만 무성한 것은 아닌 듯하다. 서울 육백년사 연표에 의하면 올해로 환갑을 맞이하는 1958년생이 태어난 해인 60년 전의 무술년은 안타깝게도 크고 작은 사고와 재난의 기록들이 많다. 2월에 영등포에서 통근열차가 전복되는 사고로 5명이 사망했고, 3월에는 종로에서 대형화재가 발생, 119동의 주택과 점포가 전소됐다. 4월에는 283명의 아편 중독자가 적발됐고, 시립 마약중독자 치료소에서 집단 탈출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8월에는 대재앙에 가까운 재난이 발생했다. 8월23일까지 전국에 뇌염환자 1225명이 발생, 226명이 사망한 것이다. 9월에는 홍수가 발생해 당시 여의도에 있던 비행장이 침수되고, 이재민 7207명, 경작지 3000여㏊가 침수됐다.

1958년 이후 60년 동안 경제, 과학·기술, 복지, 문화, 정치 등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면면이 급속도로 발전해 과거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인데 반해 60년 전에 발생했던 화재, 교통사고, 전염병, 홍수 등 사고와 재난에 대한 기록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더 다양한 형태의 사고와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과학·기술이 사회를 편리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개발되고 이용되지만 과학기술에 내재돼 있거나 과학기술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위험사회론자인 울리히 벡이 현대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사회가 발전하고 진화하듯이 사고와 재난 역시 동전의 이면과 같이 똑같이 진화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을 때는 항상 그에 수반되는 위험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이다.

25년간 재난관리 연구를 했던 필자 입장에서는 60년 전 무술년의 기록은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작년 포항지진 이후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울산과 포항을 오갔었고, 수능 수험생의 안전을 위해 연구원의 전문가들을 포항시내 각 학교에 안전요원으로 파견도 했었다. 대피소를 찾아 그 분들의 애로사항도 청취하고 그에 맞는 구호개발의 필요성도 느꼈고, 액상화 원인 및 영향분석을 위해 아직까지도 포항현장과 실험실을 오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는 필자만의 노력, 필자가 몸담고 있는 국립기관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난 상황을 개인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전문가, 개인의 전문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사회적 불안을 조성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진정 국민을 위해, 이 사회의 안전을 위해 책임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사고나 재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절실하다.

40년 전에 프랑스 사회학자이며 교수였던 피에르 부르디외는 <과학의 사회적 사용>이라는 저서를 통해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강조한 바 있다. 전쟁과 영리를 위한 과학이 아닌 국민을 위한 과학, 모두가 건전한 생각과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기 위해 과학자는 공익을 우선한 과학을 하여야 한다는 그의 생각을 오늘 다시 공감하게 된다. 무술년 새해의 첫날은 오직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과학을 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하루였다.

심재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원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