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고고학 박사

몽마르뜨 언덕은 한때 새로운 미술을 꿈꾸던 가난한 화가들의 아지트였다. 그들이 남긴 작품은 파리가 문화의 땅으로 성장하는 씨앗이 되어 수많은 화가 지망생들을 끌어들었다. 필자가 파리에 머물던 시절에 유난히 미술을 전공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많았다. 어쩌다 그들 틈에 끼어 선사미술을 공부한다고 하면 으레 곰브리치를 화제에 올렸다. 당시 미술학도들에게는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미술사가)의 <서양미술사>가 필독서였던 모양이다. 대부분 미술사 개론서는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이집트 벽화같은 선사고대미술을 간략하게 언급하고 근대미술을 진정한 미술의 시작처럼 기술한다. 때로 선사미술은 원시미술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설명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원시’는 ‘기원에 해당하는 오래된 것’이지만 ‘미개’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고대학문과 예술의 부활을 주창했던 르네상스시대에 원시미술은 고대미술을 의미했었고 그 자체가 경이의 대상이 된 적도 있다. 19세기 무렵에는 진화론의 영향으로 원시미술은 미숙하고 불완전하다는 편견이 자리를 잡았다. 1836년 고티에는 <마드모아젤 모팽>이란 소설의 서문에 ‘쓸모없는 것이 아름답고, 유용한 것은 모두 추하다’며 예술의 순수성을 주창했다. 실용미술과 순수미술의 구분은 근대미술의 근간이 되었다. 이즈음 선사미술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879년 알타미라 동굴벽화가 발견되자 학계는 조작된 그림으로 판정했다. 역설적이게도 발견자 사우투올라(Sautuola 1831~1888)는 너무 훌륭한 회화미술을 발견한 죄로 죽을 때까지 사기꾼이란 오명을 쓰고 살아야 했다.

▲ 사우투올라의 책에 실린 알타미라 동굴벽화.(알타미라 박물관·위키메디아)

우리민족의 가장 오래된 그림, 반구대 암각화는 생존과 예술적 감성이 융화된 민족미술의 원형이다. 이 거대한 벽화를 마주하면 순수미술의 가치가 무색해진다. 쓸모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이 쓸모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선사시대 화가들은 실용성과 순수성을 구분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수백 년 동안 추구해온 미술이 실용성뿐만 아니라 미술 고유의 신비로운 마력을 상실해버린 것 같다. 이상목 울산암각화박물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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