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우사가 자책을 하며 하지왕에게 말했다.

“비사벌성이 호랑이 소굴인 줄도 모르고 저는 건길지와 손잡고 박지와 석달곤을 물리칠 생각을 했으니 제가 아둔했습니다. 헌데 건길지 그 놈은 은혜를 원수로 갚아도 유분수지!”

“건길지는 무슨 죄가 있겠소. 강고내와 귀족들이 하도 성화를 부리니 마지못해 그런 것 아니겠소.”

하지왕은 건길지를 탓하지는 않았다. 다만 가야의 중심지이고 낙동강 중류의 좋은 영지와 수많은 인재를 가지고 있는 건길지가 가야의 맹주가 되지 못하는 까닭은 지도자로서의 첫 번째 자질인 결단력을 가지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고 변덕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우사는 이제야 생각난 듯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마마, 헌데 비사벌성을 떠나기 전 뜬금없이 곰발바닥 요리를 시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곰발바닥 요리를 시킨 것은 곰발바닥을 삶는 것이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오. 나를 잡아 석달곤에게 넘기려는 건길지와 강고내를 잠시 방심하도록 한 것입니다.”

“시간을 끌고 적을 방심하게 한 것이라고요?”

“그렇소.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중국 한비자를 읽고 원용한 것뿐이오.”

“한비자에 곰발바닥 이야기가 있었나요?”

고금진문의 글월을 읽고 수많은 역사서를 섭렵했다는 태사령 우사도 곰발바닥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하지왕이 말했다.

“춘추시대 초나라의 초성왕 때 일이요.”

초성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한 아들은 태자 상신이고 그 동생은 배다른 아들 서자 직이었다. 초성왕은 점점 권력이 강해지는 태자 상신을 내쫓고 서자 직을 태자로 삼으려고 했다. 하지만 태자 상신의 모반이 두려운 왕은 태자를 제거하려고 했다. 부왕이 태자를 제거하려 한다는 첩보를 들은 태자 상신은 앉아서 당하느니 차라리 선제공격을 하기로 계획했다. 태자는 야음을 틈타 자신에게 충직한 시위 군사들을 이끌고 궁으로 쳐들어가 초성왕을 포로로 잡았다.

아들에게 잡힌 초성왕은 태자에게 말했다.

“나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

“부왕은 왕위에 앉은 지 45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욕을 버리지 못하고 태자인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이제 보위를 저에게 물려주시고 자진하십시오.”

초성왕은 태자에게 말했다.

“네 말 대로 자진하겠다. 하지만 내가 조금 전에 주방에 명해 곰 발바닥을 삶아오도록 명했으니 그것이나 먹은 뒤 죽으면 원이 없겠다.”

문제는 곰발바닥은 삶아서 요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초성왕은 반격의 기회를 엿보려고 곰발바닥을 먹고 죽겠다고 한 것이다.

 

우리말 어원연구

글월. 【S】kri(크리), 【E】write. ‘크리’ ‘끄리’와 ‘글’은 같은 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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