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태사령 우사가 석공스님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가야일통의 대업을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분입니까?”

석공이 긴 눈썹 밑에 묻힌 형형한 눈으로 한동안 하지왕을 보더니 무겁게 말을 꺼냈다.

“대업을 이룰 분은 바로 여기에 앉아 계신 하지대왕님입니다.”

우사와 모추는 그러면 그렇지라고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하지왕은 고개를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저는 나이도 어린데다 나라도 빼앗겨 동가식서가숙 하고 있는데다 적의 수중에 두고온 어머니 때문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대업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저는 빼앗긴 제 나라를 다시 찾는 방법이 없겠는가 하고 스님을 찾아뵈러 온 것입니다.”

석공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저는 오래전부터 영명한 하지대왕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제가 상을 좀 봅니다만 용안을 보니 제왕의 관상인 봉황상입니다. 총기가 서려 있는 봉황의 눈과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이 명예롭게 펼쳐진 매 눈썹, 지혜롭게 솟아있는 매끈하고 윤택한 이마, 소신과 결단력이 있는 일매진 입술과 인내심이 있는 강인한 턱선이 대업을 이룰 상입니다. 다만, 아직은 봉황이 되어 날기 전 금계에 머물고 있는 초년운이라 구사일생의 간난신고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왕이 말했다.

“좋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만 저는 유복자로 태어나 고아와 질자로 자라난 고립무원에 빠진 고자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스님을 찾아왔으니 스님께서 저의 스승이 되어 갈 길을 밝혀 주십시오. 제가 찾아온 목적도 그것 때문입니다.”

우사도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스님의 말씀대로 하지대왕께선 영명하고 훌륭한 적통을 가졌습니다. 회령대왕 이후 대가야의 하지대왕은 능히 가야의 맹주가 되어 대업을 이룰 수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명한 왕사를 얻지 못해 제가 보필했지만 저의 아둔함으로 인해 심흑의 대가인 박지가 집권함으로써 대가야의 보위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현재 우리 대왕께선 강태공과 제갈공명을 만나기 전의 주무왕과 유비처럼 갈 길을 알지 못하고 천하를 전전하고 있습니다. 부디 스님께서 하지대왕의 왕사가 되어 나라를 되찾고 대업으로 가는 길을 밝혀 주십시오.”

석공스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유랑걸승이오. 오직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저를 잡아둘 수가 있습니다. 며칠 후면 저는 또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나야 합니다.”

셋은 일제히 엎드려 간청했다.

“스님, 부디 왕사가 되어 주십시오.”

석공스님은 눈을 감고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더니 이윽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는 어차피 운수행각을 하는 걸승이라 왕사로서 적당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분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두다. 【S】du(두). 【E】cause to go, move back and forth. 바둑, 훈수 따위를 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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