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하지왕이 창살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인 죄수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쥐와 벌레들이 기어 다니는 어두컴컴한 옥사였다.

“난 이 뇌옥에서 가장 형량이 높고 오래된 방장 죄수지.”

우사가 말했다.

“얼마나 형량을 받았습니까?”

“십년이지.”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을 받으셨습니까?”

“살기는 절반인 오년을 살았지.”

그제야 셋은 방장의 얼굴을 보고 놀랐다. 오 년 동안 하늘을 보지 못하고 음습한 동굴과 같은 곳에 갇혀 있는 방장의 얼굴은 마치 백납같이 희고 초췌했다. 뼈다귀가 불거지고 야위고 쇠약한 방장의 모습이지만 눈만은 형광물질을 바른 듯 번들거렸고 말은 굵고 힘이 있었다.

“그럼, 무슨 죄목으로 들어오셨는지?”

그때 방장 옆에 앉아 있는 봉두난발의 죄수가 셋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신입들이 먼저는 신고식은 않고 우리 방장님을 먼저 다루려는 것인가! 어서 무릎을 꿇고 방장님께 삼배를 올려라!”

모추가 분을 삼키지 못하고 말했다.

“이 분은 대가야의 대왕, 하지왕이시고, 여기는 태사령 우사이시네. 그리고 난 이 분들의 호위무사 모추다. 어찌 한갓 도적놈들인 옥중 죄인 따위에게 삼배를 올리겠는가.”

그러자 봉두난발이 껄껄껄 웃었다.

“무시기 왕이라고? 꾀죄죄한 네 놈들이 왕이고 관리라면, 이분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고 난 신라의 실성왕 쯤 되겠다. 푸하하하하.”

하지왕이 말했다.

“옥중에는 옥중 규율이 있는 법, 나도 일단 죄수로 들어왔으니 그 규율에 따르겠소.”

하지왕이 말을 마치자마자 죄수의 고참인 방장에게 삼배를 올렸다. 왕이 올리니 우사와 모추도 하릴없이 왕을 따라 미적미적 삼배를 올렸다.

삼배를 받은 방장이 말했다.

“이제 절을 받았으니 내가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적당한 옥중 품계를 하사하도록 하겠다. 이곳의 시간은 소털처럼 많으니 천천히 이야기를 해보라.”

방장의 말에 우사는 빈정거리고 모추는 화를 냈지만 하지왕이 방장에게 자신이 걸어온 삶을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한 때 저는 대가야의 왕이긴 했소이다.”

“여기 들어온 사람치곤 왕년에 한 가락 하지 않은 자가 없지. 일단 그렇다 치고.”

“하지만 왕으로 자리에 앉은 건 잠시일 뿐, 왕위를 찬탈당하고 이후, 도적의 산채와 적당의 소굴을 전전하며 동가식서가숙하다 결국 여기 뇌옥까지 굴러 떨어진 것이오.”

 

우리말 어원연구
하늘. 【S】ha-nri, ha-nara(하느리, 하나라). 【E】the heaven, 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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