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방장이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석공을 돌중, 땡초라는 말은 스님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말이지 왕사로서의 능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니 그렇게 괘념치 마시오.”

하지만 하지왕도 방장의 말이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석공스님이 와륵선생에 대해서 과찬을 하거나 놀림거리로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의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었다.

석공스님은 분명하게 말했다.

“제가 하지대왕의 왕사로서 추천하고 싶은 사람은 사물국 와룡산 백천에 살고 있는 명림원지라는 분으로 명성이 높아 와륵선생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저는 그분에 비하면 태양빛에 반딧불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분은 저보다는 열배나 현명한 분입니다. 주무왕의 강태공, 한 유방의 장량, 고국천왕의 을파소, 촉한의 제갈량의 맥을 이을 만한 인재입니다. 제가 서서 겨우 백리를 본다면 그는 앉아서 천리를 보는 분이지요.”

천번만번 양보해서 사물성 뇌옥에 갇혀 있는 것을 와룡산 백천에 살고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할 수 있다. 사물성 뒷산이 와룡산이고 그 산자락이 백천이기 때문에 와룡산 산자락에 자리잡은 사물성의 뇌옥이 위치 상 그리 틀린 곳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 앉아 있는 방장이라는 이 죄수는 풍채라고는 없었다. 겉모습이 듬직한 석공스님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석공스님은 운수행각으로 햇볕에 탄 검붉은 얼굴과 유난하게 길고 짙은 눈썹 살이 튀어나왔으며, 좌정한 모습은 태산과 같았으며 눈빛은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을 듯 날카롭게 빛나 능히 왕사로서 손색이 없었다.

헌데 자칭 와륵선생이라고 주장하는 방장은 꾀죄죄하게 들피진 몸에다 얼굴은 광대뼈가 솟아나와 강파르고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장애라도 앓고 있는 듯 목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척추가 약간 뒤틀려 있었다. 그의 상 어디에도 강태공, 장량, 을파소, 제갈량의 맥을 이을 지혜가 엿보이지 않았다. 다만 설득력이 있는 남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약간 튀어나온 듯한 짱구 이마, 어둠 속에서 쥐눈처럼 반짝이는 작은 눈이 모사를 칠 만한 재기가 있을 듯 보였다.

방장이 셋에게 말했다.

“지금 너희 셋의 삼배를 받고,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곳의 좌장으로서 너희 셋에게 옥중 품계를 하사하겠다. 먼저 하지왕이라는 자는 어리지만 역량과 지도력이 있어 보이니 옥중 죄수들의 군기와 질서를 담당하는 정찰의 지위를 주겠다. 우사는 학식과 업무능력이 엿보이니 죄수들의 민원을 담당하는 민통의 직을, 모추는 옥졸의 동향을 파악하고 죄수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문방의 역할을 주겠다. 단, 너희 정찰, 민통, 문방 셋은 나를 보좌하는 좌평 수수보리의 명에 따라야 한다. 알겠는가?”

모추가 방장을 비웃으며 말했다.

“사기꾼, 도둑놈의 주제에 우리를 뭘로 보고 하대하며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가. 차라리 방장 당신이 우리들의 발을 닦아주는 발당이나 하지 그래.”

점잖은 우사도 분을 참지 못하며 방장에게 사기꾼 도적놈이라며 욕을 퍼부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사물국: 현재의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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