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이 울산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팀장

온 국민을 설레게 만들었던 평창올림픽도 그 찬란한 막을 내렸다. 우리는 선수들의 호흡, 동작 하나하나에 열광하고 메달의 색깔을 떠나 큰 감동을 얻었다. 그렇다면 올림픽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일까? 그 감동의 본질은 무엇일까? 답은 올림픽이 스포츠라는 데 있다. 스포츠는 여러 특성을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공정성을 핵심으로 꼽을 수 있다.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나라라 할지라도 스포츠 앞에선 공정하다. 바로 이것이 스포츠가 지니는 특성이며, 그 극치가 바로 올림픽인 것이다.

이처럼 공정성은 사회와 구성원이 상호 신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이 공정성을 통해 우리는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공정이라는 가치는 사회 전반적으로도 높은 영향을 미친다. 이는 문화예술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러 문화예술 지원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문화재단에는 더없이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울산문화재단은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재단에서는 지역문화예술특성화 지원사업과 같은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을 통해 문화예술의 우위를 가린다는 점이 자못 내키진 않지만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을 터이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원대상의 선정을 위한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심의제도에 대해 살펴보자.

“가123번 지원자의 PPT 발표가 있겠습니다.” “네, 저희는 울산지역에서 연극을 하고 있는 단체 가123입니다. 휴~(한숨).” 파티션 너머 발표자의 긴장감이 전해온다. 심의위원은 오로지 PPT화면과 발표내용에만 집중하게 된다. 이것은 공연장상주단체 육성 지원사업 등에 도입된 블라인드 심의의 한 장면이다. 말 그대로 신청 단체나 개인의 신상을 가려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는 것이다. 각각의 활동내역을 알고 있는 심사위원의 경우 그 내용만 봐도 단체를 특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블라인드 제도의 특성상 심사위원들이 상호 합의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보완책이 마련돼 있다.

그 방안은 바로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하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심의의 경우 심의위원의 수가 대게 5명 내외인데 비해 최대 7명으로 구성해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하게 된다. 스포츠에서 보편화된 방법으로 특정단체(개인)에 대한 특혜를 최소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반대로 특정단체에 대한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확보된 7명의 심의위원들 중 심의회피제도(친인척 등 관계를 통한 특혜를 방지하는 제도) 등을 보완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효과적이다. 이 외에도 전년도 현장평가와 행정평가 결과를 반영해 환류체계를 갖춘다거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창작활동을 우대하는 등 새로 도입되거나 기존의 제도들을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심의제도의 변화에 대해 일부에서는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심의란 것이 워낙 예민한데다 한두 가지 변화에도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타 기관에서는 심의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을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울산문화재단은 이제 갓 2년차에 접어들었다. 조직의 안정화와 사업의 정착을 위해 여전히 시간이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기존의 관습을 넘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유연성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향이 공정성을 향한다면 명분은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공공의 문화재단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은 결코 쉽지 않다. 지자체로부터는 관리감독을 받고, 지역 문화예술계의 민심을 끊임없이 살피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 외에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등 여러 유관기관들과도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 가운데서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고 독립된 기관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 ‘공정성’이라는 가치추구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물론 공정성을 위해 행해지는 시도들이 곧 모든 공정성을 담보한다고 볼 순 없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단은 명심해야 한다. 결과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 대해서 모두를 이해시킬 수 있다면 분명 공정했다는 것을 말이다.

장정이 울산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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