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문화원·향토사가·문예단체 주축 시민추진단 구성 추진

오는 20일 출범식 예정…국가문화재인 사적으로 격상이 목표

▲ 울산광역시기념물 제6호 개운포성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6호 개운포성지(開雲浦城址)에 대한 정비와 보존을 시민운동 차원에서 이끌어 가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울산남구문화원과 향토사가, 전현직 언론인, 문화예술단체들이 주축이 돼 추진하는 일련의 움직임은 관방 및 생활공간으로서의 유적을 제대로 보존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알려 개운포성지를 국가문화재인 사적으로 격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운포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수군의 만호가 주둔하였으며, 세조에서 중종시기까지 경상좌수영(慶尙左水營) 소속으로 낙동강 이동지역 동남해안을 방어하는 수군의 기지였다.

1459년(세조 5) 동래 부산포의 수영이 개운포로 옮겨와서 1592년(선조 25)까지 개운포는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 水軍節度使營)이었다. 수영이 동래 해운포로 다시 옮겨간 이후 개운포에 만호진이 계속 운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임진왜란 당시 개운포에서 3차례 정도의 전투가 있었다는 점에서 개운포가 지속적으로 전략적 군사 거점지역으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영이 옮겨간 이후, 1656년(효종7)부터는 지금의 울산 중구 학성공원 아래의 전선창이 그 곳으로 옮겨왔다. 전선창은 전쟁에 쓰이는 선박을 만드는 곳으로 ‘선소’(船所)라 한다. 성안의 마을이 철거되기 이전에 이곳은 ‘선수마을’이라 불리기도 했다. 전선창은 1895년 수군이 해산할 때 폐지됐다.

조선조에 축조됐다는 개운포성은 외황강과 울산만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다. 평지와 산지의 특성을 모두 갖춘 평산성(平山城)이자 성내에 골짜기를 둔 포곡성(抱谷城)이었다.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 등이 진행한 발굴조사결과에 따르면 성 둘레는 약 1280m다. 동문지(東門址)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160m 지점에 치성(雉城)이 1개 있고, 다시 700m 지점에 북문지가 있다. 다시 서쪽으로 80m 지점에 1개의 치성이, 남쪽으로 구릉을 따라 1050m 내려간 곳에 전선과 병선 등의 배를 정박하던 선소(船所)가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소로부터 다시 100m 정도 남쪽으로 가면 또 하나의 치성이 더 있다. 개운포성의 위곽(圍郭)은 2개의 성문(동문·북문), 선소 1개, 치성 3개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몇년 간 울산지역에서는 개운포를 주제로 한 학술행사가 여러 차례 진행됐다. 그 결과 최초의 경상좌수영성이라는 의미가 부각되는가하면, 골촉박힌 고래뼈, 성암동패총과 같은 또다른 시대의 유물과 주변의 국가공단과의 연계를 통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 곳에 누적된 다양한 역사문화콘텐츠를 조명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번 시민운동은 지난해 이후 잠시 주춤하던 개운포성 보존 개발작업이 시민들의 관심으로 새로운 동력을 받아 계속 이어지도록 하자는 취지다.

심영보 울산남구문화원 사무국장은 “그 동안의 연구결과에 비추어 해당 유적이 사적에 준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여론이 적지않은만큼 시민추진단을 구성해 이를 알려 나가는 정지 작업을 하고자 한다” 했다. 이어 “추진단은 약 50명 내외로 예상되며 유적지 청소와 학술재조명, 그 가치를 주변에 적극 알리는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위촉식 및 출범식과 같은 대외 공식행사는 오는 20일 열릴 예정이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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