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명림원지가 쥐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천시가 임박했습니다. 머지않아 곪을 대로 곪은 사물국에 종기가 터져 정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사가 명림원지의 말에 퉁을 놓았다.

“선생, 당장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우리에게 천시를 기다릴 시간이 어디 있소?”

명림원지가 말했다.

“천시는 조율하면 되는 것입니다. 맹자가 말했듯 천시는 지리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만 못합니다. 천시와 지리를 움직이고 활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지요. 저는 지난 오년 간 옥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내보냈는데 이들 중 몇몇은 사물국과 가야제국의 정사당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삼십 여명의 죄수도 제 수하에 있습니다.”

하지왕, 우사, 모추가 기율, 정찰, 문방의 옥중 품계를 받았듯이 현재 옥중에 갇혀 있는 죄수 30여명도 모두 품계를 받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뇌옥에는 잡범과 오사리잡놈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들도 제 재주에 맞는 역할을 맡으면 일당백을 감당할 능력자들입니다. 또한 죄수들 중에 우사 선생처럼 뜻이 있는 지사들도 없지 않습니다.”

명림원지가 옆에 앉아 있는 좌평 수수보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여기 봉두난발의 좌평 수수보리도 한때 백제의 내신좌평 산하, 곡내부 소속의 5품 내솔이었습니다. 여가전쟁에서 백제로 넘어간 가야 6국중 상다리로 와 외위 4품인 주수를 맡아 사물국과 주류와 곡물, 해산물 등을 거래했습니다. 하지만 소아주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고 거래를 했다는 괘씸죄에 걸려 적반하장 격으로 사물국의 물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씌워 가둬놓고 있습니다.”

“흠, 수수보리는 백제인이군요.”

“그렇습니다. 해상 무역에 매우 밝은 자지요.”

우사가 말했다.

“그럼, 내일 무슨 수가 나는 겁니까?”

“일단 오늘은 밤이 깊었으니 취침하도록 합시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어오겠지요.”

목창살 사이로 명림원지와 하지왕, 우사, 모추는 취침 인사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왕은 흙바닥에 덕석을 깔고 누더기와 함께 기운 가마니를 덮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이면 소아주는 망나니를 보내 세 사람의 수급을 베어갈 것이다. 백척간두에 누운 셋은 모두 전전반측이었다. 우사와 모추는 그렇게나 만나기를 고대했던 명림원지가 죄수로 있는 것이 못미더워 실망감을 금치 못했지만 하지왕은 왠지 모르게 신뢰감이 생겼다.

‘그래,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

하지왕은 하루 종일 피곤한 마련으로 죽음보다 깊은 잠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우리말 어원연구

백제로 넘어간 가야 6국은 상기문(임실, 번암), 하기문(남원), 상다리(순천, 광양), 하다리(여수, 돌산), 사타(고흥), 모루(무안)이다.

상다리는 지금 순천, 광양 일대로 비정되고 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