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옥졸이 기상 패종을 두드렸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가마니를 걷고 일어났다. 아침 햇살이라곤 한 오라기도 들어오지 않아 옥졸의 패종이 아니면 아침인 줄도 알지 못했다.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을 잔 하지왕과는 달리 우사와 모추는 밤새 잠을 설쳤는지 눈이 퉁퉁 부은 모습이었다. 옥졸이 ‘점호’를 외치자 방마다 번호를 대며 머리 숫자를 확인했다.

점호가 끝난 뒤 명림원지가 하지왕에게 인사를 했다.

“대왕마마,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덕분에 잘 잤습니다.”

“역시 마마의 간담은 크십니다. 두 분과는 달리 코를 고시며 주무시더이다.”

“인명은 재천인데 걱정한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습니까. 그보다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 게지요.”

“오늘 아침에 사형 집행이 있을 것 같습니다.”

“......”

“평소 같으면 점호가 끝남과 동시에 옥졸이 방을 따고 죄수의 발에 차꼬를 채워 노역장으로 끌고 나가느라 부산한데 오늘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지 않습니까?”

노역수는 기상과 동시에 발에 차꼬를 차고 바깥으로 나가 채석장, 철장, 건축 등 중노동에 동원되어 하루 종일 돌 다듬기, 돌 옮기기, 주물하기, 터파기 등 일을 한 뒤 다시 뇌옥으로 돌아오는 게 일과였다. 노역수들은 힘들지만 바깥에 나가 그나마 햇볕이라도 한 자락 쬐니까 독거수에 비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대역죄인으로 분류된 명림원지는 잡범과는 달리 햇볕이 드는 바깥으로 노역을 나갈 수 없었다. 통풍이 안 되는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뇌옥에 꼼짝 않고 오 년을 앉아 있는 것은 차마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노역수라도 삼 년을 넘기기가 힘든데 명림원지가 독거수로 오 년 동안 버티고 있는 것은 기적과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옥졸이 죄수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대역죄인의 사형집행이 있으므로 노역이 없다. 모두 앉아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도록!”

죄수들이 웅성거리며 모두 하지왕과 우사, 모추를 쳐다보았다.

조금 뒤 옥문이 덜컹 열리더니 망나니를 대동한 형리들이 들어왔다.

“사물국 한기님의 명에 의해 대역죄인 하지, 우사, 모추는 수급이 베어져 고향 대가야로 돌아갈 것이다. 머리로나마 고향으로 돌려보내는지는 것은 한기님의 은전이다. 대역죄인들은 나오라.”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손발에 차꼬가 채워진 채로 옥방을 나왔다.

하지왕이 명림원지에게 마지막 하직인사를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나고 싶었던 와륵선생을 여기서나마 뵈어서 다행이었소.”

명림원지가 큰절을 하며 말했다.

“저도 마마를 뵌 게 큰 광영이었습니다. 저승길은 굽이굽이 멀고 황천은 큰 강이라는데 쉽게 건너겠습니까. 어느 모롱이에서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멀다. 【S】muhda(머흐다), 【E】distant. 산스크리트어 ‘머흐다’는 ‘멀다’라는 뜻의 우리말 고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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