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망나니와 도수들은 순식간에 하지왕과 우사, 모추를 에워싸 사형장으로 끌고 갔다.

사물국 한기 소아주가 배를 내밀며 사형 집행장에 도착하자 망나니가 말했다.

“대역죄인들은 대 한기님 앞에 무릎을 꿇으시오!”

도수들이 셋의 무릎을 꿇리자 소아주는 망나니에게 집행명령을 내렸다.

“대역죄인 하지와 우사, 모추는 참수해 그 수급을 대가야 어라성으로 보내라!”

“알겠사옵니다.”

망나니는 회자수 칼을 받들고 읍을 했다. 창대수염이 난 망나니는 키가 구척장신으로 사형수의 목을 열 경 이상 베어본 노련한 자였다.

우사가 소아주에게 큰 목소리로 항변하였다.

“한기, 도대체 우리 죄가 무엇이란 말이오? 멀쩡한 나라를 찬탈하고 주군을 내쫓은 악당인 박지와 석달곤이 대역죄인이지 아무 죄 없이 내쫓긴 우리가 왜 대역죄인인 것이오?”

소아주가 우사에게 말했다.

“아무 죄 없이 바보처럼 내쫓긴 그것이 바로 대역죄다. 먹물깨나 먹었다는 자가 권력의 패자들이 대역죄인이 된다는 걸 정녕 모른단 말이냐? 네 놈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국정을 농단하고 재물을 착복하여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기에 망했을 테지. 권력을 잃은 뒤에는 도적들과 한 몸이 되어 온갖 살인과 강도 행위를 저질렀으니 참으로 참수형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대역죄인들은 목을 내밀라.”

하지왕이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옆의 우사와 모추를 보며 탄식했다.

“참으로 미안하오. 그대들은 지금까지 줄곧 나와 더불어 생사고락을 함께 해왔건만 결국 빛 한번을 보지 못하고 가는구려. 이생에서는 못난 암주를 만났으나 다음 생에서는 현명한 주군을 만나 복락을 누리고 사시오.”

망나니가 칼을 높이 흔들면서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사형수의 목을 베기 전 허공에 칼을 휘두르며 한바탕 춤을 추는 것은 사형수의 혼을 빼어 공포를 덜어주고 죽음의 고통을 유희로 달래기 위함이다. 또한 망나니의 칼춤은 무당이 방울을 흔들어 귀신을 쫓듯 삿된 것을 물리치고 죽음을 새로운 생명으로 인도하는 엄숙한 장례의식이기도 한 것이다.

망나니가 칼춤을 다 춘 뒤 사정없이 모추의 내민 목을 뎅겅 날렸다. 모추의 수급이 흙바닥에 떨어져 피를 흘리며 나뒹굴었다.

하지왕은 아직도 살이 파르르 떨리는 모추의 몸을 붙들고 울부짖었다.

“모추야, 왕자처럼 늠름하던 천하제일의 무사가 이런 개죽음을 당하다니!”

이어 망나니는 우사의 목을 쳤다. 우사의 수급도 땅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아, 태사령. 지혜로운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도척 같은 소아주의 칼에 허망하게 죽다니. 하늘의 도는 진정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망나니는 하지왕에게 다가왔다. 칼이 허공에 번뜩였다. 하지왕의 머리는 창천에 붉은 피를 뿌리며 치솟았다 땅에 풀썩 떨어졌다.

아, 앗. 하지왕은 죽음보다 깊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우리말 어원연구

살. 【S】sari, 【E】flesh. 살, 살림, 사람, 사리(舍利)는 모두 인체와 연관된 언어이고 어원이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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