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좋은 나라 후손에 물려줘야
과거 바로잡아 미래 화합 지향

▲ 윤정문 전 울산강남교육장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차별화한다고 한 번씩 헌 집을 고쳐왔다. 부패척결 시정쇄신 부동산정책 역사바로세우기 각종 규제철폐 경제민주화 등 많이도 고쳐봤다. 그러나 또 5년이 지나면 지붕에 비가 새고 기둥이 상하고 벽이 무너지고 서까래를 갈아야 하는 헌 집 고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목수들의 기술이 부족한가, 헌 집 고치는 자재가 불량품인가, 일하는 인부들이 게으른가, 목수들의 먹줄이 정확하지 않는가, 비새는 곳을 옳게 찾지 못해서일까. 왜 우리는 3만불 깔딱 고개를 10년이 넘도록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정권마다 헌 집만 고치다가 세월을 보내야 하나? 안타깝다.

1896년 독립신문의 사설 ‘목수가 헌 집 고치는 순서’는 120년이 지난 지금도 대학생들의 교재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나라를 개혁하는 것도 목수가 헌 집 고치는 것과 같은지라 일의 선후가 있고 경중이 있다. 뒤에 할 일을 먼저 한다든지 경한 일을 중한 일보다 더 힘쓴다든지 하는 것은 일이 안될 뿐 아니라 이왕에 된 일도 없어질 터이니 이 경계를 모르면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지 서투르게 건드리는 것은 어서 집이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일 목수가 새 기둥과 새 서까래를 준비하지 않고 다 베어버린다면 썩은 것이 없어 좋기는 하나 집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것은 서투른 목수들이 헌 집 고치는 이치와 같다.’

목수들이 어떤 자(尺)로 재느냐에 따라서도 척도가 달라진다. 곧은 자(直尺)냐 굽은 자(曲尺)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목수에 따라 시기에 따라 장소에 따라 이중삼중의 굽은 잣대를 적용하면 더욱 혼란스럽고 그 고친 헌 집은 오래 못가서 비가 샌다. 굽은 자가 바른 자인 양 착각하고 붉은 신호등에서도 여럿이 손잡고 건너면 괜찮다는 떼법이 아직도 이 사회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헌 집이나마 옳게 못 고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가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미래를 위해서는 오늘의 준비가 필요하다. 고칠 것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과거를 시정하면서 미래를 향한 화합도 지향해야 한다. 타성에 젖어 그 껍질에 안주하고 있는 한 결코 바깥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현 정부에서 적폐청산이란 개혁과제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기울어진 헌 집은 바로 잡을 수 있다. 위태로워진 헌 집은 안정시킬 수 있다. 뒤집어진 것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그러나 한번 폭삭 내려 안거나 망한 다음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가정이 그렇고 기업이 그렇고 국가도 다 그런 범주에 속한다. 목도의 기술은 박자를 맞추는 협동에 있다. 박자가 안 맞으면 협동이 불가능하고 협동이 안 되면 모든 일이 깨진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자기만 옳다는 외골수 신념들이 흘러넘친다. 신념이 나쁜 게 아니라 자기 신념에 포로가 돼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훼손시키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화합과 협동보다는 갈등과 분열이 우리의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세조의 장자방으로 명성을 떨쳤던 한명회는 말년에 죽게 되었을 때 성종에게 유언을 올리는데 그 중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사람은 처음엔 부지런하다가도 끝에 가서 게을러지는 것이 보통 인정이니 원컨대 처음과 같이 하십시오’ 우리는 용두사미니 작심삼일이니 하면서 처음의 계획이 시간이 지날수록 흐지부지되기 때문에 헌 집을 고치는 일을 되풀이 하고만 있다.

한명회는 이런 인간의 속성을 경계하지 않고는 비새는 헌 집을 옳게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앞으로 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적폐청산이니 복지시책, 청년일자리 등 많은 과제들이 또 다음 정권에서 다시 헌 집 고친다고 세월을 허비하는 일이 없도록 합심하고 협동하고 지혜를 모아 후손들에게 살기 좋은 조국을 물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윤정문 전 울산강남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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