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하지왕은 명림원지가 그토록 천하대업을 설한 것이 결국 성인인 석가모니로 귀결되니 허무하기는 했다. 하지만 허허실실한 그의 말에는 항상 실한 뼈가 들어 있었다.

하지왕이 명림원지에게 말했다.

“우사와 모추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성인은 우리가 생각한 천하대업의 영역에 벗어나 있는 인물입니다. 비록 불교를 하나의 법술로 보더라도 살생을 금하고, 공을 논하는 불가로 지금 대가야가 처한 엄중한 현실을 타개하기에는 너무 약한 등불입니다.”

명림원지는 하지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약한 등불이 맞습니다. 하지만 약한 등불이 어둠 속에 발걸음을 인도합니다. 가장 강한 불은 전쟁 때 집과 마을과 가축과 사람을 모조리 태우는 충화이지요. 제가 왜 석가모니가 진정한 천하대업을 이룬 분인지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명림원지는 보리수 열매로 만든 염주를 꺼내 굴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아시타 선인이 와서 정반왕에게 예언을 했습니다. ‘이 아이는 세속에 있으면 전 세계를 정복해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고 출가하면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가 될 것이오.’ 당연히 전륜성왕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이 출가하지 못하도록 궁궐 담장을 높이 쌓고 온갖 세상의 향락을 제공했지만 석가는 결국 출가를 선택했습니다. 출가를 선택해 보리수나무 아래서 성도해 부처가 된 순간, 석가는 마왕의 항복을 받아내고 전륜성왕에 등극한 것입니다.”

명림원지가 말을 하고 있을 때 옥졸이 와서 명림원지를 불러내었다. 명림원지는 옥졸과 얘기한 뒤 방으로 돌아와 공지하듯 크게 말했다.

“지금 바깥엔 장마가 그쳐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쨍쨍 하답니다. 이대로 가면 내일 사형집행이 있을 거라는 옥졸의 전언이오. 우리의 옥중 동료가 하루라도 먼저 목숨을 잃으면 되겠소? 모두 함께 전륜성왕 석가모니 부처님과 비를 내리고 파도를 잠재우는 관세음보살님께 빌어야겠소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나무관세음보살!”

명림원지가 낭랑한 목소리로 염불을 외자 좌평 수수보리와 죄수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염불했다. 하지왕도 무릎을 꿇고 염불을 하자 유학자인 우사와 전통 무신교도인 모추도 동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왕과 우사, 모추는 놀랐다. 아무리 명림원지가 옥중 방장이라지만 거칠고 난폭한 옥중 죄수들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고 움직이는 것으로 봐서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동굴 뇌옥을 가득 메운 염불이 끝나자 명림원지가 하지왕에게 편안한 어조로 말했다.

“마마, 염려 놓으십시오. 우리 모두 정성을 다해 일심으로 부처님께 기원했으니 오늘 저녁 유시부터 다시 비가 내리고 자시가 지나면 폭우가 쏟아질 것입니다. 그럼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무신교(巫神敎): 무, 무교라고도 한다. 신과 사람을 이어주는 영매자가 무당인데 가야, 신라, 백제의 남부지방은 세습무로서 우연적인 강신무인 북부지방에 비해 무당과 제도와 신당을 갖춰 보다 체계적이었다. 영고, 동맹, 상달제 등 제천의식과 천군, 소도, 화랑도, 풍류도, 점복, 굿 등은 전통적인 무신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반도 남부 지방의 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신도가 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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