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자리, 내 밥그릇, 내 목숨까지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세계 최초에 걸맞는 진짜 혁신

▲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온 세상이 ‘격동’에 빠졌다. 하루에도 수십번 남북정상회담 관련 뉴스 업데이트, 북미대화와 북핵이슈는 어느새 종전논의를 넘어 통일담론에 이르고 있다. 불과 몇달 전 전쟁위기로 평창올림픽을 걱정했던 대한민국이 천지개벽되었다. 거꾸로 국내정치는 ‘언제나’ 진흙탕싸움으로 요란하니 격동에 늘 보탬이 된다. 자원재활용시스템의 불완전성이 수면위로 드러난 비닐수거 거부사태와 미세먼지 이슈까지 그야말로 요즘은 삶 자체가 드라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도 격동이 생겨나고 있다. 너무 오래, 너무 많이 접해 이제는 남녀노소 모든 이의 귀에 딱지가 앉은, 지겨운 ‘인공지능’ 관련 소식들이 이제 가정용 스피커, 홈케어 디바이스, 다양한 로봇의 모습으로 출시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은 일상생활에 실제제품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자율주행차, 전기차도 개인용 모빌리티부터 일반승용차, 버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구조로 속속 출시되고 있다. 운전이 필요없고,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더 이상 먼미래, 딴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이 되었다.

이런 전방위적 천지개벽의 난리통에 너도나도 부르짖는 식상한 구호가 있으니 다름 아닌 ‘혁신-innovation’이다. 혁신이라는 단어가 진부하다니, 이것도 세상 아이러니다. 어딜 가나 혁신이란다. 조직을 정비하고 공장을 구성하는데도 혁신, 정치에도 혁신, 선거에도 혁신, 밥 먹는 것에도 혁신, 새 프로젝트 구성에도 혁신, 피자 배달, 택배, 운동까지 세상 모든 것이 다 혁신의 주체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진부한 구호가 실제로 작동하고 적용되고 있는가를 찾아보면 그렇지 못하다. 당장 업무프로세스속 온갖 서식과 결제형식은 바뀔 줄 모른다. 조직을 합쳐놓아도 혹은 새로 ‘헤쳐모여’ 시켜도 여전히 부서간 업무공유는 고사하고 협조도 잘 안된다. 어떤 혁신안을 만들어도 노사 혹은 기타 이해관계에 따라 이리 찢기고 저리 뜯겨서 결국 옛방식 그대로 한발짝도 못바꾼다. 정치싸움이야 뭐 할 말이 없다. 시대가 바뀌어 그토록 혁명과 혁신을 부르짖던 80년대 학번세대가 주축이 된 지금도, 여야간 트집잡기 형식의 논쟁전개는 수십년동안 항상 똑같다. 선거도 바뀔 줄을 모른다.

왜 혁신은 이렇게 구호로 그치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기심’ 때문이다. 세상 다 바뀌고 좋아지는건 맞는데, 딱 하나 전제를 두고서다. 바로 ‘나는 바뀜의 대상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대로 남고 싶고, 뭔가 바뀌어서 머리 아프고 싶지 않아서다. 속마음은 기존 서식과 규정 그대로 쓰고 싶고, 쓸데없이 일 벌여서 할일이 더 생기는 것이 귀찮다.

필자가 과거 한 자동차기업연구소에서 어떤 미래모델의 외장디자인그룹장을 맡았을 때, 우리 그룹이 이전과 전혀 다른 혁신적 디자인을 제안한 발표가 있었다. 당시 참석자 모두로부터 멋진 미래적 느낌의 모델이라는 칭찬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발표가 끝나고난 후 벌어졌다. 품평 뒤 차량 각 부분 설계담당자들이 개별적으로 찾아와 꺼낸 말들이었다. 맨 처음 찾아온 도어설계담당자는 디자인은 멋지고 너무 훌륭한데, 새로운 형식의 도어손잡이로 변경하지 말고 예전 타입 그대로 쓰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 다음에 온 램프담당자는 디자인이 자신이 봐도 너무 좋은데, 제발 이번 모델에는 적용하지 말고 다음 모델부터 적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다른 업무가 많아 바쁘고, 신모델 개발 및 검증기간이 부족하니 안된다는 핑계는 똑같았다. 다른 부분들이 모두 혁신적이어서 자기 담당부분 하나 정도는 이전방식과 같아도 혁신성에는 문제가 없지 않겠냐는 웃픈(?)분석까지도 똑같았다. 세상에나…. 결국 자신의 업무만은 편하게 해달라는 의도아닌가?

오늘날의 혁신도 똑같다. 관리비 절감을 위해 CCTV로 바꿔달며 아파트 경비원은 줄이면서 내 직장의 구조조정에는 반대하는가? 온갖 자동화, 무인화, 공정축소는 환영하면서 정작 내 밥그릇은 그대로이길 바라나? 조직과 프로세스를 혁신한다며 왜 제도와 운용은 그대로 두나. 4차산업혁명이라며 도시를 혁신하는데 왜 신사업, 새연구를 펴지못하고, 기존 기업의 업태와 규모를 존치할 생각에 빠져 있나. 사용자경험연구에 따른 형태와 구조를 반영하지 못한채 이미 발표한 뻔한 자율주행버스, 뻔한 전기차 받아 운행시키면 혁신도시인가?

19세기말 청나라가 취했던 ‘중체서용’ 같은 실패한 ‘무늬만 개혁’과 다름없다. 중국의 몸(정신)은 그대로 두고 서양의 것(문물)을 이용한다는 것은 애당초 지도부 자신은 그대로 있겠다는 무늬만 혁신이기 때문에 실패하고 멸국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진짜 혁신은 내자리, 내 밥그릇, 내 목숨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혁신이다.세계 최초와 세계 초일류는 진짜 혁신에 대한 보상일 따름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혁신을 외치는 당신에게 ‘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정연우 UNIST 디자인·공학 융합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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