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

가끔 반구대암각화에서 어떤 그림을 가장 좋아하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대략 난감한 질문이다. 필자에게는 어떤 그림을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보인 반구대암각화는 관리청에 출입허가를 받아야 가까이 가볼 수 있다. 어쩌다 물 건너 암각화를 볼 기회가 생기면 꼭 살펴보는 그림이 하나 있다. 거대한 절벽 좌측면 맨 아래에 새겨진 큰 손발가락을 가진 사람이다.

선사학에서 이런 그림을 앤트로포모피(anthropomorph)라고 부른다. 그리스어 anthropos(인간)와 morphe(형태)를 합쳐 온전한 인간뿐 아니라 얼굴이나 손발 같은 신체일부, 반인반수(半人半獸, therianthropic), 사물을 의인화(擬人化, anthropomorphize)한 모든 이미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물상(人物像)으로 번역할 수 있다.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인물상은 대부분 벌거벗은 옆모습에 남성의 성징(性徵)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들이다. 창이나 활을 들고 사냥을 하거나 긴 도구를 입으로 불고 두 손을 높이 치켜든 모습도 있다.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짐작케 하는 장면들이다.

아리엘 골란(Ariel Golan)은 넓게 펼친 손에 손가락을 과장되게 표현한 선사시대 인물상을 여신의 상징이라고 보았다. 그 상징성이 바빌론에서 이쉬타르(Ishtar), 이집트의 이시스(Isis), 이슬람에서 파티마의 손(Fatima Khamsa), 불교의 신(Bodhisattva)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 배꼽 달린 여인

이들 신상에 유독 손가락이 강조된 것을 보면 나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Homeros)는 장밋빛 손가락으로 불리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를 어둠의 장막을 걷어 세상에 빛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묘사했다. 그래서 손가락을 태양의 상징으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굳이 이런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하지 않아도 반구대암각화의 이 인물상이 어떤 특별한 존재의 여성임을 추론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물상에 표현된 남성의 성징이 없고, 긴 역삼각형의 머리 형태나 큰 손발가락을 펼친 비범한 자세가 여느 인물상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내면을 쪼아내고 배 부분만 자연암면을 남겨두었다. 볼록하게 튀어나온 바위가 참외배꼽처럼 생겼다. 의도적으로 쪼지 않고 남겨둔 것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디며 모진 탁본 방망이를 맞으며 두터운 얼음장을 겪으면서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다. 우리민족의 가장 오래된 신상(神像)일지도 모르는 여인의 배꼽을 보면 늘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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