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명림원지는 하지왕과 구투야에게 말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요동을 순행하고 난 뒤에 열병이 걸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지왕께선 국내성으로 가서 광개토왕을 문병하고 대가야의 왕과 가야연맹의 맹주로 책봉 받아야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신라에 들려 실성왕에게 이를 통보해 대가야에 주둔하고 있는 석달곤의 병력을 빼야 합니다.”

구투야가 명림원지에게 화를 버럭 내었다.

“광개토는 우리 가야의 철천지원수요. 광개토 때문에 우리 금관가야는 망했고, 가족들은 유랑걸객이 되었고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산적이 되었소이다. 그에게 문병해 책봉을 바라느니 차라리 형가처럼 비수를 품고 암살하겠소.”

구투야는 여가전쟁으로 고구려군에게 가족은 몰살되고 집은 불타 검바람재로 들어가 산적이 되었다. 구투야는 불행의 원천인 광개토대왕을 나라와 가문의 철천지원수로 생각하고 언젠가는 칼을 품고 고구려로 가 암살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명림원지는 하늘을 보고 구투야를 보며 생각하더니 말했다.

“좋은 생각이오. 하지대왕을 모시고 함께 국내성으로 가시오. 문병을 하면서 틈을 보아 광개토를 척살해 원수를 갚아도 좋습니다. 두 분께서 함께 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만약 암살에 성공하면 우리 병력은 검바람재에서 대가야로 쳐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광개토로부터 책봉을 받으면 대가야에 무혈입성을 할 것입니다.”

하지왕 일행은 검바람재에 도착했다. 멀리 대가야의 어라성이 보였다. 성의 굴뚝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짐바리를 실은 말과 나귀들이 떼를 지어 검바람재를 넘고 있었다.

‘아, 꿈에 그리던 고향이구나. 어머니는 유폐당하고 후누장군은 뇌옥에 갇혀 있는데 나는 언제나 저 곳에 돌아갈 수 있을까.’

명림원지가 하지왕에게 말했다.

“대가야는 조그만 사물국과는 다릅니다. 여가전쟁으로 망한 금관가야의 사람과 물산들이 대거 대가야로 유입되었습니다. 박지는 부패관료이나 경제를 잘 아는 자입니다. 박지가 정변을 일으킨 뒤에 오히려 대가야는 더욱 부유해지고 백성들은 대가야가 살만한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어라성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박지가 낙동강을 이용해 고구려 신라 백제 왜와 무역해 치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력으로 대가야를 쳐서 이긴다 하더라도 그동안 이룬 대가야의 번영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할까 염려됩니다.”

하지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와륵선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소. 나 또한 평화로운 방법으로 대가야를 찾는 모색을 할 것이오.”

“박지 집사는 어떡할 생각입니까?”

“물론 와륵선생이 말한 대로 박지는 대가야의 집사로 임명되어야 합니다. 다만 전쟁을 할 경우는 제거해야 합니다. 박지를 제거하는 것이 전쟁의 대의명분이 될 테니까요.”

“영명하신 판단입니다. 마마, 이제 구투야와 함께 고구려 땅으로 출발하십시오. 한시가 급합니다. 텁석부리와 고두쇠를 먼발치에서 따르는 전령으로 붙여드리겠습니다.”

 

우리말 어원연구

바리. 【S】bali(발리), 【E】a load of wealth. 바리바리 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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