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홍 울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2018년 4월 27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 개최되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역사적인 회담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한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부자연스럽고 안타까움이 가시지 않는 만남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판문점도보다리에서 30분 간의 단독대화를 나눈 후 문재인·김정은 양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에 서명하였다. 그 내용은 분단과 대결 종식, 민족적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으로 전면적·획기적 남북관계 개선 및 발전,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및 전쟁 위험의 실질적 해소, 항구적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등의 세가지 분야로 나뉘어 작성되었다.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대부분이 그 동안 1차 및 2차 남북정상회담이나 기타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들을 다시 언급한 것들이고, 새로운 것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합의는 문재인 정부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남게 되었다.

우선 10·4 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한다는 부분인데, 이는 노무현·김정일 간 2차 남북정상회담 시 합의된 내용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에 2007년 당시에도 10조가 넘는 재원이 들어간다고 논란이 크게 되었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국내적으로 국민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부분은 국회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우선 부담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재원이 동원되어야 하는 사업들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문재인 정부에서는 분명하게 해법을 밝혀야 할 것이다.

둘째, 서해 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든다는 부분이다. 물론 우발적 군사충돌을 방지하고 안전한 어로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명분을 들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서해지역과 수도권 배후지역의 안전보장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대비태세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앞선다. 이는 10·4 선언 시에도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고, 그 이후 북방한계선 대북 양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었다.

셋째, 평화협정으로의 정전협정 전환문제에 있어서 그 다음 단계에 대한 이면논의가 없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 다음 단계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라는 것이 북한의 전략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완전한 비핵화를 통하여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는 부분도 문제이다. 물론 비핵화 부분은 김정은·트럼프 간의 북미정상회담으로 넘길 수밖에 없고, 또한 그것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면(面)을 세워주는 일일 것이다. 문제는 ‘핵 없는 한반도’의 개념이 북핵의 해체인지 아니면 한반도 및 그 주변지역의 비핵지대화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엄청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비핵화의 내용은 북한 핵무기의 해체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비공식적으로라도 김정은에게 이를 분명하게 확인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은 지난 합의들을 다시 부활하는 데에 남북 정상이 합의하였다는 것이고,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은 그 동안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남북 합의를 국민들에게 다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북한의 도발에 의하여 대부분의 남북합의가 무너져 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4·27 남북정상회담에 나온 데에는 북한 국내경제적 필요성, 국제사회의 제재,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 체제로서는 김정일 사망 이후 6년 동안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까지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국력을 소모하였다. 북한 주민들 스스로 소련이 겪었던 ‘레닌그라드 봉쇄’보다 더 심한 경제적 제재를 당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북한은 내부적으로 경제적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따라서 6월까지 견디기 힘든 체제생존적 위기에서 남북회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최대의 압박정책이 북한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가 북미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하여 그 역할을 잘 해야 하는 회담이었다. 그런데 비핵화의 방법론을 놓고 미국의 트럼프는 완벽하고 불가역적인 해체(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주장하고, 북한 김정은의 기준은 외부로부터의 군사적 위협이 없고 체제안전이 보장되면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완전하면서도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체제보장’(CVIG: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guarantee)이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4월20일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포함에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여기서는 “2018년 4월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명시되었다. 물론 미국 행정부가 원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하여 그러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핵무기 병기화 완결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핵실험도 미사일 시험발사도 필요없게 되었음을 주장하였고, “우리 국가(북한)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핵국가들에게서나 나옴직한 말만 골라서 한 것이다. 즉 북한이 핵국가임을 천명하고 핵국가끼리 핵군축을 위한 논의를 하자는 내용을 그 근저에 깔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CVID 대 CVIG’라는 원칙이 충돌하는 경우 대한민국은 어떠한 입장에 설 것인가? 문재인 정부에게 더 큰 숙제가 놓인 것 같다.

김주홍 울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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