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CEO 대통령, CEO 시장 등의 구호가 유행하고 있다. 행정과 경영의 유사성을 함축하는 말이다. 실제로 그 둘은 모두 조직 관리(administration)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관리의 요체는 조직목표를 효과적,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기업경영의 목표는 대체로 이윤의 극대화인 것으로 일컬어지고, 그것을 달성하는 효과적 수단은 인 것으로 이해된다. 상품의 판매량과 매출액이 늘어나야만 이윤이 증가하고, 매출액 신장은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소비자만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초경쟁 시대인 1990년대 이후에는 기업들이 너도나도 고객만족을 명시적으로 내세우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상품의 수요자인 고객이 원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1970년대 이전에는 싼 가격을, 1980년대에는 우수한 품질을 중요시했다면 1990년대 이후에는 뛰어난 고객서비스가 으뜸의 가치가 된다. 고급화한 현대 소비자에게 가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품질은 응당 갖추어야 할 기본이므로 이 구매결정의 핵심기준이 된다. 그에 따라 기업은 항상 소비자 위주로 생각하고 그들이 최대한 편하도록 배려해야 하게 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목표로서 지역의 경제력 향상을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고, 그 점은 울산도 마찬가지이리라. 경제적 풍요가 울산시정의 주요목표라고 전제한다면 그것을 달성하는 효과적 수단은 어김없이 이다. 이 경우의 수요자는 물론 주민과 기업이다. 보다 일반적으로 현대행정의 기본원칙은 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야만 기업과 주민의 숫자가 늘고, 그 행동이 활발해진다. 기업과 주민만이 경제적 가치, 즉 부(富)를 창출하므로 그들의 왕성한 활동은 지역경제의 활성화로 나타난다.

 무엇이 수요자 중심의 행정인지는 잘 알려졌기에 구체적으로 따지지는 않는다. 대신에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 보자. 불행히도 각급 관청에서 수요자 중심의 행정이 펼쳐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에 관청 중심, 공무원 위주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고객만족 행정에 대한 논의와 약속은 많았지만 잘 실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수요자 중심의 행정을 실천하는 출발점은 라고 지적할 수 있다. 관청을 출입해본 시민은 누구나 느끼지만 대다수 공무원들이 먼저 생각하는 것은 윗사람이다. 보고를 잘하기 위해서 혹은 결재를 쉽게 받기 위해서 상사의 스케줄을 챙기고, 서류를 만들며, 회의를 준비하는 데에 바치는 시간이 엄청나다. 공무원과 회의 약속을 하면 시간이 변경되거나 하급자가 대신 나오는 경우가 흔하다. 참석예정자가 그 상위자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민간인과의 약속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관청의 내부에 권위주의 질서가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업무시간을 내부목적에 소비한다면 주민과 기업을 위한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에서 아무리 현장행정을 강조해도 현장을 방문할 시간이 없고, 기업지원을 독려해도 기업의 애로를 성의 있게 듣고 해결해 줄 정신적 여유가 없게 된다. 그러면 행정의 수요자인 주민과 기업의 만족은 요원해진다.

 각급 관청의 공무원이 격무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 아니고 이다. 관청의 안을 들여다보느라 바쁘다면 그것은 경제적 가치와는 무관하다. 부를 창출하는 것은 관청의 안에 있는 공무원이 아니고 바깥에 있는 주민과 기업이기 때문이다. 결국, 관청 내의 권위주의가 불식되어야만 주민과 기업의 편의가 진작되고 그 결과로 해당지역이 부강해진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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