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가야와 왜가 신라에 침입하자 광개토태왕은 신라 내물마립간에게 보기병 5만 명의 구원병을 보내 신라 서라벌을 침입한 가야와 왜의 군대를 몰아냈다. 종발성을 함락하여 임나왜소를 멸하고 점령한 금관가야에 아라가야의 술병을 주둔시켰다. 광개토태왕이 군대가 국내성을 비운 틈을 타 후연의 모용성이 고구려를 침입해 국내성 밖까지 진출하자 태왕은 바람같이 북으로 달려가 후연의 모용성을 국경 밖으로 밀어내고 숙군성을 공략했다.

한편 고구려의 위세를 등에 업은 신라는 낙동강 이동에 있는 가야 땅인 독로국과 미리미동국을 멸하고 처음으로 가야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승냥이와 같은 백제는 고구려의 위세에 눌려 고구려를 치겠다는 이시품왕과의 약속을 배반하고 오히려 소백산맥 이서에 있는 옛 마한의 땅 가야 육국을 삼키고 동남부로 세력을 뻗쳤다.

400년 고구려의 원정은 한반도와 중국의 세력 구도에 일대 전환을 일으킨 것이다. 이 전쟁으로 광개토태왕은 신라 가야 백제 중국 왜를 속국과 신국으로 삼는 천하의 패자가 되었고 가야의 영토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404년 태왕은 후연의 연군을 정벌했다. 연군을 정벌하러 간 틈을 타 고구려의 대방계로 쳐들어온 백제와 왜의 연합군을 궤멸시켜 다시 한 번 천하의 패자임을 증명했다.

407년 태왕은 후연을 붕괴시키고 이를 계승한 북연왕 고운에게 같은 고씨 종족의 예를 베풀었다. 이후 북연은 고구려의 종속국이 되었다.

410년 태왕은 동부여와 연해주를 정복했다.

412년 태왕은 북부여의 옛 땅에 수사를 파견하고 숙신의 땅을 순수하다 병에 걸려 국내성으로 귀환했다.

태사령은 태왕의 정복업적을 기록한 사초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이처럼 국강상광개토호태왕은 수백차례의 전투에서 백전백승하여 광개토경을 사방 천리까지 넓히고, 폐하의 위무는 북으로는 숙신부터 남으로 삼한과 왜까지, 서로는 북연과 동으로는 예맥까지 사해에 떨치셨습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왜를 쳐 신국으로….”

광개토태왕이 침상에 기대어 끝없이 읽어대는 사관의 사초를 듣다가 낭독을 잘랐다.

“그만 멈춰라. 전쟁이란 살육이고 도살이다. 성과 땅의 정복은 헛되고 헛된 것이다.”

거련을 비롯한 왕족과 중신들은 태왕의 말에 깜짝 놀랐다. 죽기 전 노망이 드신 게 아닌가. 평생 태왕이 목숨을 걸고 이룩한 빛나는 업적을 스스로 짓뭉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련이 태왕에게 말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즉위 초부터 정복 전쟁을 시작해 이 나라를 동북아 최강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전쟁 없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만들었으며, 전쟁 없이 어떻게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삼키려는 적국들로부터 나라를 보전하겠습니까?”

태왕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거련에게 또렷하게 말했다.

“태자, 난 전쟁으로 너무나 많은 무고한 백성의 피를 흘렸다. 짐은 여기서 선포한다.”

 

우리말 어원연구

바람. 【S】va(바), 【E】wind(바람), air(공기). 동국정운에는 ‘바흐람’, 순경음 ‘ᄫ’으로 음가가 ‘v’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바람의 어원은 ‘바+흐름’. ‘공기가 흘러간다’ 혹은 ‘공기와 물을 함유한 것’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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