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멘, 끝나지 않는 이야기

▲ 예멘은 유향과 몰약과 향료 무역으로 그 이름을 떨쳐왔고, 세계에서 최초로 커피를 재배한 모카커피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사진은 베이트알파키프시장.

동서교역의 중심지 예멘
고대 ‘향료의 나라’로 유명

수년전 방문했던 예멘은
옛모습 그대로 곱게 늙은 건물과
이방인·여성에 친절 베풀던
이국적 매력 지닌 사람들로 기억

지난 3년간 시대적 아픔으로
테러·내전에 얼룩진 모습 안타까워

오래 전 사진을 꺼낸다. 2009년 2월, 나의 첫 번째 배낭여행지는 ‘아라비아의 보석’이라 불리던 예멘이었다.

생소하기 그지없던 예멘을 동경하게 된 계기는 여행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동생때문이었다. 그가 건넨 한마디가 마음을 움직였다. “100여개국 이상을 여행했지만 그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갖게만든 나라는 바로 여기, 예멘이 처음이었다.”

예멘이 ‘행운의 아라비아’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오래 전 부터 ‘향료’의 나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유리한 곳에 위치한 예멘의 향료는 홍해 연안을 따라 페트라로 교역되었고, 그 중 일부는 이집트로, 나머지는 그리스나 시리아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수출되었다. 예멘의 향료는 해로를 통해 중국과도 교역을 해 왔다. 홍해에 위치한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예멘이 동서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후 모카커피와 더불어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 유럽 지역으로도 영역을 확장하며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 예멘의 남자들은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닌다. ‘잠비아’라고 불리는 반달 모양의 칼이다. 칼을 차는 관습은 먼 옛날 부족 간의 싸움이 일상적이던 시절에 비롯됐는데, 지금은 장식의 의미가 크다.

예멘은 중동국가 중 유일하게 아랍인의 독특한 기질과 문화적 전통을 잘 이어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만들어졌다. 지역과 문화, 풍경, 사람 모두는 서로와 관계하고 영향을 미친다. 종교는 발생한 지역의 지리적인 특징과 문화적인 특징을 공유하는 만큼, 이슬람 문화의 특징 또한 아라비아 반도의 풍경과 닮아 있다. 거친 사막과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몇천년 넘게 지속해오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정신과 문화를 만들어 냈다.

예멘이 한국에 알려지게 된 이유는 탈냉전시대를 맞아 동서양 진영에 해빙무드가 시작되고 나서다. 독일이 통일을 하면서, 한국과 같이 강대국의 지배와 분단의 아픔을 공유한 예멘 역시 국제사회의 변화와 사회적, 종교적인 이유로 급격한 통일 논의가 이어졌고, 1990년 5월 드디어 통일을 이뤄냈다. 당시 예멘의 통일로 인해 한국은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게 되었다. 이후 한국에서는 예멘의 통일 과정을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해 학자들이 많이 방문하게 되었다.

▲ 부르카를 쓴 여자들의 삶은 그 얼굴만큼이나 베일에 싸여 있다. 단지 그 눈빛만을 볼 수 있을 뿐.

예멘에서의 촬영은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콘셉트로 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풍경’은 도리어 우리에게 굴레와 족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풍경 안에서 삶을 영유하기 위한 터전을 만들고, 이를 지켜려 투쟁한다. 이런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풍경과 동화 된 인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는 하나의 정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끼치고 이해하면서 만들어지는 소통 안에 존재한다. 현장에서의 촬영은 사람과 풍경 사이에는 서로 얽힌 관계가 존재하고 그 관계를 카메라 앵글을 통해 멀찍이, 혹은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과정으로 진행됐다.

▲ 홍해의 일몰

예멘의 올드 사나(옛 도심)는 마치 먼 과거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몇 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옷을 입고, 변하지 않은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옛 모습 그대로 곱게 늙은 건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었다. 낡디 낡은 그 풍경 속에서 언뜻언뜻 고대의 어느 한 시기에 그들이 누려던 영화와 번영이 스쳐갔다.

‘잠비아’라는 칼을 앞섶에 찬 남자들과 부르카를 두른 여자들은 이방인에게 두려움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쭈뼛쭈뼛하는 사이 내게 먼저 말을 건 것도 그들이었다. 이내 다가온 그들이 “싸딕(친구)!” “수라(사진)!”을 외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부르카 사이로 보이는 여인들의 눈에는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의 미소가 가득했다.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풀고 여성을 존중해주는 이슬람의 문화를 그동안 우리가 너무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올드 사나의 낮 풍경

우리가 식사시간에 거리를 거닐때면, 그들이 생면부지의 우리를 초대했다.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우리의 식사비를 대신 내어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를 타면 여자들을 위해 좌석의 제일 뒷자리는 항상 양보했다.

우리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풍경으로 인해 예멘의 문화, 역사, 종교의 한 일면을 오해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어떤 편견을 갖게 되었다는 걸 알게됐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그들을 바라봤던 우리의 시각이 100%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또한번 떠올리게 됐다.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롭던 예멘이 지난 3년 간 세계 최악의 긴급구호지역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불과 몇년 전 다녀왔던 당시의 예멘이 마치 신기루와 같이 느껴져 안타깝다. 테러와 내전으로 얼룩져 있는 그들에게 봄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 올드 사나의 밤 풍경. ‘아라비안 나이트’의 실제 무대가 바로 예멘이다.

알자지라 방송에서 울부짖는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수년 전 내가 보았던 아름다운 미소와 오버랩되며 마음이 아팠다.

▲ 안남용 사진가, 다큐멘터리작가

최근에는 예멘 서부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수니파 연합군에 연계된 정부군과 이란 지원의 후티 시아파 반군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면서 최소한 115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도 접했다.

우리의 봄이 그들에게도 찾아 와 따뜻했던 올드 사나의 그 골목에서 포격 소리 대신 웃음 소리가 울려퍼지기를, 그들의 역사가 내전과 무질서로 더이상 얼룩지지 않기를, 그들을 떠올릴 때 우리와의 삶의 방식은 달랐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살고있다 기억되기를 기원해 본다. 안남용 사진가, 다큐멘터리작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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