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없는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
현실적 애로에도 희망의 끈 잡고
목표실현 위해 중단없는 노력을

 

효과적인 외교는 효과적인 정치와 마찬가지로 ‘네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묻는게 아니라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를 보여 주는데서 시작한다. 지금 한반도에서는 어쩌면 역사상 가장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상(現狀)의 개조(改造)를 위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세력은 불리한 조건에 놓인 약자이다. 위험을 감수하는 까닭은 위대한 승리에의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승자는 모든 문제에서 답을 찾아내고, 패자는 모든 답에서 문제를 찾아낸다.

북한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던 평화를 향한 일련의 과정에 제동을 걸었다. 세계가 긴장속에 추이를 살펴보고 있다. 남북문제에서는 작은 일이 큰 일일 수 있다. 신도 악마도 디테일 속에 있다고 하듯 작은 일이 중요하다. 사소한 동티일수록 조심스럽게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물며 관련 강대국이 관여하는 지금 돌발변수는 차라리 상수(常數)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문제에만 집중해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문제 뿐일 것이다. 그러나 브레인 스토밍을 통해 문제자체보다는 새로운 기회와 잠재성에 눈을 돌린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날 지적 흥분과 낙관적 사고가 저절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 줄 것이다.

우리와는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독일의 역사를 참고해보자. 동서독은 1972년 12월 기본조약을 체결해 상대와 평화공존하는 협조적 생존방식인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를 실현했다. 현상을 인정해 현상을 변경한다는 패러독스로 보이지만 그것은 독특한 역사변증법이었다. 합병에 의한 통일은 정책이 아니라 기적대망론이라 배격되었다. ‘큰 소리보다 작은 걸음’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소량의 독극물을 조금씩 서서히 써서 체질을 바꾸는 호메오파티 요법이었다. 당시의 서독 수상 브란트는 갈등하는 국민들에게 “평화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1990년 10월3일 독일은 기적처럼 통일을 이루었다. 그것은 결코 기적은 아니다.

기후, 인구, 정치, 경제분야의 모든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가치관도 변화하는 상황에 의해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서서히 바뀌어 간다. 어제의 옳은 일이 오늘은 그른 일이 되고, 오늘의 그른 일이 훗날 옳은 일이 될 수 있는 이유이다. 평화나 통일은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니라 멀고 지루한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정세의 변화나 돌발적인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인내심과 관심으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역사의 주역이 되는 결정적 세대라면 자부심과 품격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국민의 품격은 정치지도자들을 더욱 고민하게 만들고 정파적 이해관계보다 국가대의를 위한 큰정치를 해야할 의무를 더욱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도 엄청난 파급효과가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외교의 변방에 불과했던 한반도가 일약 세계외교의 요충지로 한순간에 부상했고 남북한의 살벌하던 분위기를 단숨에 바꾼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가능성을 확인해본 것만 해도 경천동지의 사건이다. 이제 그정도를 넘어 실효적인 공존, 협력의 방안들이 전개되는 새시대를 연다면 우리 세대에 봄 아지랑이 같은 희망을 심어 한반도의 후손들에게 비할 바 없는 미래의 꿈을 선물할 수있게 된다. 도전할 때 희망은 온다. 불과 몇 개월 전만해도 상상할 수없던 전대미문의 일이 전개되고 있다. 옛 영국 수상 처칠은 말했다. “이 세상에서 처음에 공상력을 갖지않고 위대한 일을 해내는 경우는 없다. 먼저 공상력을 가진 다음에 그걸 실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의 한국사람들에게 필요한 말 아닌가?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