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광개토대왕의 국상은 성대하게 치렀다. 그의 시신은 여산 남쪽 기슭에 묻히고 그의 정복치적을 새긴 거대한 능비를 무덤 앞에 세우고 수묘인을 두었다. 애도기간이 끝나자 거련은 고구려의 장수대왕으로 등극했다.

하지왕은 장수왕을 구하려다 맹독을 바른 사설도에 팔뚝이 찔렸다. 독 기운이 온몸에 곧바로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맸다. 고구려 중신들은 하지왕을 그대로 방치해 죽게 내버려두자는 의견이었다. 장수왕도 하지를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비록 자기 대신 구투야의 독검에 찔렸지만 둘이서 짜고 친 골패라는 생각이었다.

‘두 놈이 똑같은 암살자다. 이번 암살 시도에는 하지의 책임이 더 크다. 하지는 독으로 죽게 하고, 구투야는 온갖 고통을 맛보며 죽게 해야 한다.’

왕으로 등극한 장수대왕은 사정전에서 구투야를 직접 국문했다.

“구투야, 네 이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감히 부왕과 나를 죽이려고 칼을 품고 침전으로 뛰어들었더냐. 지금 하지는 네 독칼을 맞고 행복하게 죽어 가고 있다. 하지만 너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맛보게 한 뒤 사지를 찢어 죽이리라. 먼저 놈에게 압슬형을 가하여 암살의 진상을 밝히도록 하라!”

무릎을 눌러 으스러뜨리는 압슬형은 모든 고문 중에 가장 잔혹한 고문이었다. 날카로운 쇳조각을 깔아놓은 자리에 죄인의 무릎을 꿇게 한 뒤, 그 위에 무거운 돌을 얹어서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이다. 다른 고문의 경우 혼절하거나 숨이 멎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압슬형은 죽이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고통을 증가시키는 고문이다. 압슬형은 아들이 아버지를 역적으로 지목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역적으로 만들게 했다. 원하는 대로 자백을 받아낼 수 있는 형문이었다.

구투야는 압슬형을 당하면서 불에 달군 인두로 온몸이 지져져 검게 탄 생채기마다 피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지독한 고문으로 얼굴은 형체를 못 알아볼 정도로 일그러져 변형되었다.

장수왕이 구투야에게 말했다.

“하지가 네 놈에게 암살 지시를 했지?”

“하지왕은 내가 칼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몰랐다. 하지왕은 광개토를 부왕으로 여겨 문병하러 올라온 것이다. 나는 하지왕을 이용해 단독으로 가문의 복수를 하러 온 것뿐이다. 광개토와 네 놈을 죽여 복수를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이 놈이 아직도 험한 주둥이를 나불거리느냐. 더러운 입을 찢고 주리를 틀어라!”

추관이 칼로 구투야의 입을 찢은 후 두 개의 박달나무 막대기를 가랑이 사이에 끼워 어긋나게 젖혔다. 구투야의 다리뼈가 으드득거리며 가랑이가 죽 찢어졌다. 피를 튀기는 짐승같은 울부짖음이 사정전 하늘 위로 메아리쳤다. 신문과 고문은 반나절이나 계속되었다.

장수왕은 하지와 구투야가 광개토대왕의 문병을 빌미로 국내성 침전으로 밀고 들어와 부왕과 자신의 암살을 시도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구투야는 거열형이 내리고, 하지왕은 뒤늦게라도 뉘우쳐 장수왕을 구한 것을 감안해 독살형에 처해졌다. 구투야는 국내성 앞 저자거리에서 팔다리가 네 마리의 말에 묶여, 말을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뛰게 해 사지가 갈가리 찢겨져 죽었다. 구투야의 찢겨진 몸은 개와 돼지에게 먹이로 던져 주었다.

 

우리말 어원연구

모르다. 【L】mola(몰라), 【E】unknown. 라틴어, 영어, 산스크리트어도 실담어의 한 갈래다.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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