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독기운이 온몸에 퍼져 사흘 째 의식을 잃은 하지왕을 고구려 의박사는 죽었다고 판정했다. 그의 시신은 어릴 때부터 그를 사모했던 상희공주가 수습해 거둬갔다.

진시황제를 척살하려던 암살자 형가는 그의 품에 ‘서부인’이라는 단검을 품었다. 서부인은 머리카락이 떨어져도 반으로 잘라지는 날카로운 비수로, 형가는 칼날에 ‘견혈봉후’라는 맹독에 적셔 들어갔다. 독의 효능은 한 줄의 피가 번진 정도의 상처를 내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즉사시킬 수 있을 정도도 강했으나 끝내 형가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광개토대왕을 암살하려던 구투야는 ‘사설도’라는 단검을 품었다. 사설도는 칼날의 끝이 뱀의 혀처럼 갈고리로 된 두 날로 되어 한번 박히면 뽑기 힘들었다. 칼끝에는 맹독인 짐독을 발랐다. 짐독은 맹독성의 조류인 짐새의 깃털을 태운 재로 독성이 강하고 빨라 망국의 군주들이 술에 담가 마시고 죽기도 했다. 짐새는 중국 남방 광둥에 서식하는 새로 길이는 한 자가 조금 못되고 털빛은 흑적색, 눈은 검은색의 맹독성 조류다. 구투야는 장수왕을 죽이려 했으나 엉뚱하게도 그가 모시던 하지왕의 팔뚝을 찔러 죽게 했다.

상희공주는 하지왕의 시신을 수습해 목관에 넣고 있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오빠 장수왕이 매정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몸을 던져 오빠 살리고 대신 칼을 맞았는데, 이대로 죽게 방치하다니! 더욱이 부왕께선 임종의 자리에서 전쟁 대신 평화를 유언으로 남기면서 하지왕을 대가야의 국왕으로 책봉하지 않았던가.’

상희공주는 목관 안에 누운 하지왕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들여다보았다.

‘참 잘 생기고 아까운 인물이다. 마치 살아 있는 듯하구나. 오빠, 조금 있으면 나는 엄마와 오빠의 등에 떠밀려 사랑하지도 않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신라의 실성왕에게 시집가요. 그곳의 삶이 오빠가 누워 있는 이 목관 안과 다를 바가 뭘까요. 마음 같아선 나도 오빠 곁에 눕고 싶어요.’

그녀는 목관 위에 나무 널 덮개를 덮고는 한 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하지왕은 처음 칼을 맞았을 때 짐독의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에 퍼져 사지는 마비되고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구투야가 중국에서 수입한 짐독가루는 오랜 기간 해상을 통해 들어오면서 비바람을 맞아 강한 독성이 약해졌다. 사흘이 지나자 맹독열이 식어지면서 서서히 마비가 풀렸다.

상희공주는 목관을 수레에 실어 매장지로 옮겨가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수레 위 목관 안에서 하지왕의 의식이 깨어났다.

하지왕이 눈을 떴을 때 깜깜한 어둠만이 보였다.

‘여기가 어딘가? 저승인가?’

하지왕은 손으로 더듬어 보다 나무 벽 같은 게 만져졌다. 그는 나무 벽을 세게 두드렸다.

‘쾅쾅쾅’

목관 안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상희공주는 하인들에게 수레를 멈추게 하고 나무널 덮개를 열었다. 목관 안에서 귀신인 듯 망령인 듯 하지왕이 몸을 일으켜 나왔다.

 

우리말 어원연구

바르다. 【S】vri(브리), varna(바르나), 【E】paint.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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