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상희공주는 목관에서 살아나온 하지왕을 자기의 침전으로 데려와 눕혔다.

상희공주의 얼굴은 어릴 때와 달리 많이 성숙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상희공주는 공주답지 않게 선 머슴애처럼 구는데다 꺽감을 오빠라고 부르면서 좋아하며 따라다녔다. 고구려 천하의 국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고구려인들은 변방에서 미천한 가야 아이를 경멸의 눈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린 상희는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꺽감과 어울리며 놀았다. 상희는 드러내놓고 꺽감을 좋아한다며 따라다녔다. 상희공주는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성격이 보리처럼 억셌다. 상희공주와 달리 백제공주 다해는 얼굴이 해끔하고 피부가 쌀알처럼 투명하게 비칠 정도였다. 눈이 크고 다소곳해 질자로 끌려온 남자애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꺽감도 다해를 보면 괜히 가슴이 콩닥거렸다. 꺽감이 다해에게 눈길을 주면 상희는 화를 버럭 내거나 삐졌고, 그렇게 질투하는 것만큼이나 꺽감에게 귀한 먹거리를 곰상스럽게 챙겨주고 값비싼 선물도 했다.

상희가 자기 궁궐의 수말하고 꺽감이 관리하는 마방의 암말하고 접을 붙여 망아지를 얻자며 부랄이 덜렁덜렁한 수말을 몰고 올 때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상희는 활도 잘 쏘고 말도 잘 탔으며, 검술도 뛰어났다.

광개토태왕은 상희보고 늘 말했다.

“너와 거련이 바꿔 태어났으면 좋을 뻔 했다. 거련은 네 엄마를 닮아 여자처럼 그 속을 알 수가 없고, 병약하다. 헌데 선 머슴애 같은 너는 나의 성격을 빼닮았구나.”

상희공주가 독 기운에 절여 사흘 동안 의식을 잃은 하지왕에게 해독제를 먹였다. 갑자기 잠자고 있던 맹독이 저항의 열기를 발하자 온몸에서 팥죽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고열로 신음했다.

“해독제가 독을 죽이느라 열이 납니다. 냉찜질을 해야 합니다.”

상희공주는 말하더니 하지의 상의를 풀어헤쳤다.

“공주…….”

“맹독열이에요.”

상희는 수건을 차가운 물에 적셔 먼저 하지의 상체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고맙소, 공주.”

상희공주가 하의와 고쟁이마저 풀자 하지는 생사를 오가는 마당에도 부끄러움을 느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손을 놓으세요. 온몸을 물수건으로 닦아내지 않으면 위험해요.”

상희공주의 물수건이 배를 지나 사타구니로 지나 발끝까지 내려갔다. 똬리고추같이 조그맣게 말려 있던 근이 서늘한 기운에 서서히 펴지며 살아났다.

상희공주가 놀라며 말했다.

“어머, 이게 뭐죠?”

 

우리말 어원연구

보리. 【S】vrihi(브리히), 【E】barley. 우리말, 산스크리트어, 영어의 어원이 같다.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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