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1)

▲ 화려하면서도 지나치게 근엄하지도 않고 주눅이 들만큼 위압적이지도 않은 아름다운 목조건축의 불전을 가진 치앙마이 왓 프라싱 사원.

몬족으로부터 전수받은 불교문화
태국식 소승불교로 발전시킨 저력
불교사원도 특유양식으로 발전시켜
아름다우나 고답적이지 않은 불전
도시경관과 천연덕스레 잘 어울려

태국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에 자리한 나라다. 한국 사람치고 태국 한번 안 가본 사람이 드물 정도로 익숙한 나라이지만 아시아에서 ‘남 다른 그들다움’을 설명하기는 그리 녹록지 않다. 일반 관광객의 시선으로 보면 이웃 미얀마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과 다를 것이 없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역사는 뿌리와 갈래를 구분할 수 없으리만큼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문화의 유전인자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역사로부터 단서를 얻는 것이 지름길이다.

태국의 역사를 인종중심으로 보면 타이 족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들의 선조는 원래 중국 남부의 운남지방에 살던 따이 족이다. 이들은 태국 북부에 이주하여 13세기경 두 개의 나라를 건설하게 되는데 하나는 오늘날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하는 란나 왕국이며, 하나는 수코타이 지역에 세운 수코타이 왕국이다.

이들이 빠른 속도로 강력한 국가를 발전시키게 된 핵심적 요인은 강력한 동화능력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쫓겨나게 되었음에도 그들로부터 군사제도를 배우고, 크메르계 선주민을 정복하면서도 정치, 행정, 법 체제를 받아들이고, 몬족으로부터는 불교문화를 흡수하여 소승불교를 태국식으로 발전시켰다. 그야말로 남의 문명에 빨대 꽂고 영양분만 흡수하여 제 것으로 만드는 천부적 능력을 갖추었던 것이다.

타이문명의 원조를 보기 위해 치앙마이로 향한다. 열대우림의 산악과 짙은 녹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치앙마이는 16세기까지 태국 북부를 지배했던 란나 왕국의 수도였다. 그 외곽에서 반듯한 수로형 해자와 붉은 벽돌로 쌓은 성벽이 나타난다. 비록 성벽과 성문은 일부뿐이지만 정사각형에 가까운 외곽의 흔적은 뚜렷이 남아있다. 남대문과 동대문만 도로 한복판에 남겨둔 서울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은 편이다.

뜻밖에도 가로변의 풍경은 너무나 현대적이다. 간혹 민속풍의 건물도 섞여있지만 현대식 카페나 식당, 호텔들이 너무나 익숙한 현대도시의 풍광을 보여준다. 그 거리에서 사원들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도시와 혼합되어 있다. 겁나게 크지도 않고 신성함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들의 대부분은 13~14세기에 지어졌거나 최소한 그 시기의 건축양식이다. 분명 옛날식 건축양식임에도 불구하고 한물간 구시대 양식으로서의 시대적 간극을 느낄 수가 없다. 그 모습이 너무도 당당하여 오히려 요즘 건축들이 주눅들 지경이다. 이러한 익숙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물론 태국사원이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태국 불교가 크메르의 대승불교, 스리랑카를 원조로 하는 미얀마와 몬족의 상좌부불교(소승불교)를 전수 받았듯이, 사원건축도 이들의 건축양식을 전수받았다. 하지만 이들은 유전인자일뿐 복제품을 만들지는 않았다.

태국의 불교사원은 아름다운 목조건축의 불전을 갖는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어마어마한 돌을 산처럼 쌓아 만든 인도네시아나 캄보디아의 층단형 돌탑도 아니고, 거대한 벽돌 탑 안에 불전을 둔 미얀마의 사원과도 다르다. 태국 사원에서 탑은 불전 뒤에 기념물처럼 숨겨져 있다. 사원에서의 예불 행위는 대부분 불전에서 이루어진다. 불탑을 유지하면서도 불전을 결합하여 발전시키는 태국식 사원의 재창조라 할 것이다.

불전들은 화려하지만 주눅이 들만큼 근엄하거나 위압적이지 않다. 이곳 토속건축에 뿌리를 둔 고급건축 양식임에 분명하다. 사원은 누구에게나 개방적이다. 입구에서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릴 필요도 없다. 옷깃을 여미게 하거나 정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격조있는 커피가게처럼 일상적으로 부처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태국 불전건축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지붕에서 나타난다. 여러 단을 가질 뿐만 아니라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다. 당연히 층과 단이 많을수록 고급건축이 될 터이다. 층단 사이의 공간은 더운 공기를 식혀주는 환기구 설치가 가능하다. 가파른 지붕경사로 우기의 강한 소낙비에 대응하기 좋았을 것이며, 내부에서는 마치 고딕 성당의 높은 천장처럼 웅장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그 원조가 어디에서 왔던 그들만의 독특한 형식으로 발전시킨 것은 분명하다. 목구조를 이용하여 높고 큰 공간을 창출해 냈고, 덥고 습한 기후에 대응하도록 지붕형식을 개선했다. 단단 다층형 지붕으로 품격을 나타내는 디자인을 구사하기도 했다. 화려한 색채의 외장과 부조들은 태국식 사원의 새로운 형식을 표출해 주었다. 그것은 마치 궁전과 같이 고급스럽지만 결코 외경스럽지 않은 친밀감으로 도시와 어울리게 된 것이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질식할 것 같은 무덥고 습한 더위에 거리는 오수로 한산해진다. 바쁜 사람은 철모르는 관광객들뿐이다. 여유가 있다 못해 나른한 거리에서 도시와 종교건축의 관계를 생각한다. 한국에서 현대도시와 어울리는 종교건축을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동네 커피점보다 많은 종교건축들이 도시경관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우리 종교의 배타적 폐쇄성, 사대주의적 보수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신자가 아니라면 함부로 들어설 분위기가 아니다.

건축양식 또한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교조적이다. 사찰이야 우리네 전통건축이라 주장하겠지만, 교회나 성당은 서양의 옛날 건축양식에 머물고 있다. 서구에서도 골동품 취급을 받는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이 한국에서는 끈질기게 유지되고 있다. 중국적 예제를 고수하려했던 조선시대 서원, 향교 건축이나 다를 바가 없다. 원조를 존중하기 때문일까. 이 도시의 경관과 어울리는 한국적 종교건축은 언제쯤이나 가능한 것일까?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