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하기 / 그림 이상열

▲ 그림 이상열

어라성 관내의 옥문이 열리며 박지가 옥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납빛이 되어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다.

박지가 옥방의 창살을 잡고 명림원지와 후누를 보며 말했다.

“역적의 우두머리가 제 발로 걸어온다고 하는군.”

“드디어 고구려에서 하지대왕이 내려오는군요.”

명림원지가 쥐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하지왕이 오면 곧바로 이곳으로 모셔 감옥에서 두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오. 역적의 뿌리가 뽑히게 되니 대가야는 국태민안해지고 나와 구야왕은 두 발을 뻗고 자겠지.”

“하하하, 하지대왕과 함께 오는 고구려의 상희공주도 여기 감옥에 있으려는지 궁금하군요? 하지대왕을 대가야의 왕으로 책봉하라는 고구려왕의 칙명이 내려왔군요. 칙명에 의해 석달곤의 신라군은 지금쯤 낙동강을 넘어 서라벌로 가고 있을 거고, 구야왕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보위를 버리고 외가인 미리미동국에 가 숨어있겠지요.”

“으음.” 박지는 칼을 맞은 듯 신음소리를 내었다. 그의 말이 한 치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좌경천리 입경만리’라더니 과연 명림원지는 신통력을 지닌 와룡산의 현자임에 분명했다.

박지가 비로소 본색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래서 당신과 협상하러 왔소.”

“당신이 의지했던 두 힘, 왕과 군대가 없어졌는데 협상할 거리가 뭐가 있소?”

이번에는 박지가 오히려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왕실과 군대도 재물이 없으면 허깨비가 사는 짚 덤불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동안 집사가 부라퀴처럼 긁어모은 재산을 뇌물로 협상을 하겠다?”

“그까짓 내가 축적한 재물이 몇 푼이나 된다고 그러오? 난 나라의 재산을 말하는 것이오.”

명림원지는 퉁을 놓으며 말했다.

“국창의 재물은 대가야를 접수하면 그만이오. 그대와 협상해봐야 아무런 실익이 없소.”

“물론이오. 난 국창의 재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오. 대가야가 경제 중심지가 된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엄청난 지하교역망 때문이오. 지하교역망으로 밀수출, 밀수입하는 철과 무기, 도기와 금, 은, 보석 등 장신구, 차와 술, 쌀과 곡식, 어물과 육고기, 베와 가죽피의 교역망은 누구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나만 알고 있소.”

“뇌물이 오가는 은밀한 지하교역망을 줄 터이니 자리를 보전해 달라는 것입니까?”

“그렇소, 와륵선생.”

박지는 당당하게 말했다.

명림원지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그리 허술할 것 같소? 이미 좌평인 수수보리를 통해 거미줄 같은 대가야의 지하교역망을 다 파악해놓았소. 이제부터 지하에서 은밀하게 거래되던 모든 물품들은 뇌물 대신 세금을 매겨 공정하게 거래될 것이오. 하지만, 나와 협상할 단 한 가지 자산이 그대에게 남아 있소이다.”

 

우리말 어원연구

국창(國倉): 나라의 창고.

(본보 소설삽화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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