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1879년 스페인 북부 산티야나 델 마르라는 작은 산촌마을에서 역사상 첫 구석기시대 동굴벽화가 발견됐다. 아마추어 고고학자 사우툴라(Marcelino de Sautuola, 1831~1888)가 어린 딸 마리아(Maria)와 함께 자신의 영지를 탐사하다 발견한 것이다. 사우툴라는 벽화가 구석기 미술임을 직감하고 정성스럽게 그림을 모사해서 학계에 발표했다. 이제 막 선사학이 뿌리를 내리던 시절, 누구도 구석기시대 그토록 화려한 벽화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1881년 알타미라 동굴을 조사한 프랑스 고생물학자 아를레(Edouard Harle)는 최근에 그려진 조작된 그림으로 판정했다. 1889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선사학 학술대회에서 프랑스 선사학자 카르타야크(Cartailhac, 1845~1921)는 사우툴라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시 학술위원 중에서 알타미라 동굴 직접 본 사람이 없었지만 모두 카르타야크의 견해를 지지했다. 결국 사우툴라는 위조혐의로 피소되었고 죽을 때까지 사기꾼 누명을 벗지 못했다.

이후 프랑스에서 라뮤수(1895), 페농페(1896), 마르술라(1897), 퐁드곰(1901), 베르니팔(1902) 동굴에서 잇따라 벽화가 발견되자 완고했던 학계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다. 1902년 선사미술의 선구자 브뢰이(Henri Breuil, 1877-1961) 신부는 ‘알타미라, 불신에 대한 고백’이란 논문으로 진실을 밝혔다. 그제야 카르타야크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고 사우툴라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알타미라를 찾아갔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 피카소의 황소(The Bull, 1945년) 출처­Paul Bahn, 2005, Pablo Picasso and Ice Age Cave Art.

알타미라 동굴벽화 발견에 관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최근 휴 허드슨(Hugh Hudson) 감독이 안토니오 반데라스(Antonio Banderas) 주연 ‘파인딩 알타미라(Finding Altamira)’라는 영화로 제작했다. 현대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1939년경 알타미라 벽화를 보고 “우리 누구도 이렇게 그릴 수 없다. 알타미라 이후 모든 것이 쇠퇴했다”며 감탄했다. 피카소의 1945년 작품 ‘황소’는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대한 오마쥬(hommage, 존경의 표시)로 알려져 있다. 평론가들은 스페인을 떠나 오랜 망명생활을 했던 피카소의 작품에 등장하는 황소를 알타미라와 조상에 대한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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