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사라지면 연구·논쟁 무의미
관련기관 보존 위한 결단등 내리고
시도 특별경관대책 속히 마련해야

▲ 이기원 울산경제진흥원장

또 비가 온다. 인간들은 이 비를 좋아한다. 물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으니, 홍수가 날 정도가 아니면 비를 좋아할 수 밖에.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나 반구대 암각화는 비가 겁이 난다. 비가 계속 내리면 나는 물에 잠겨 숨도 쉴 수 없고 최악의 상태로 이 여름을 또 넘겨야 한다. 나를 바위에 새겨진 단순한 그림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차제에 나의 진가에 대해서 밝힌다면 나는 국보 제285호로 지정된 문화재로서 내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인간이 바다에서 고래를 사냥한 시기가 10~11세기로 추정되었는데, 나는 이보다 수천년 앞선 그림으로서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오죽하면 어느 학자가 나를 경주에 있는 모든 문화재를 합친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했겠는가? 이러한 평가를 바탕으로 나는 2010년에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고 앞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나를 1년에 상당기간 댐에 잠겨 있는 상태에서 훼손 시켜야 하는데 2000년대 초부터 계속 연구만 하고 실효성있는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정말 답답하다.

대책의 방향은 두 가지로 집약이 된 듯하다. 울산시는 생태제방을 쌓는 방안을 주장했고, 문화재청은 주위경관 훼손 등의 이유로 반대하면서 댐의 수위를 낮추자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울산시민들의 식수 확보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울산시는 대체수원 확보를 전제로 이 방안에 동의를 한 바 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양 기관이 대책을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아무리 연구해도 20여년간 검토한 지금까지의 방안보다 더 좋은 다른 방안은 없으리라고 본다. 연구만 하는 동안에 나는 침수가 되풀이되면서 계속 훼손되고 있다. 나의 진가를 정말 제대로 평가한다면 나를 보존하려는 문화재 관련 기관들의 과감한 결단과 실행력이 필요할 뿐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재청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적의 안이 어려울 경우에는 선택지 중에서 최선의 안을 선택하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문화재청에 제언해 본다. 지금과 같이 수위조절안을 계속 주장하려면 우선 대통령에게 보존의 필요성과 대체수원을 확보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함을 특별 보고하고, 대통령이 직접 환경부 등 관계 부처·자치단체와 함께 챙기도록 해야 할 것이다. 수자원은 어디까지나 국가자원이다. 또 문화계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분야인가? 울산시 공무원에 의하면 전전(前)정부 시절, 기업경영에 방해가 되는 소위 ‘전봇대’ 뽑기를 할 때 울산시에서는 산업단지 조성절차 간소화와 문화재 발굴기간 규정(規定)등 2개 과제를 건의했는데, 전자는 반영돼 산업단지 조성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투자유치에 큰 도움이 된 반면 문화재 발굴문제는 기획재정부까지 나섰지만 결국 개선하지 못했다 한다. 그런 힘을 가진 문화계가 아닌가? 그 힘이 이제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관철시킬 자신이 없거나 문화계의 모든 힘을 모아 시도했는데도 안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내가 다 부식되어 사라질 때까지 연구와 논쟁만 할 것인가? 하루 빨리 주위 경관을 최대한 살리면서 나를 보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울산시도 문화재청과 함께 나를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추진하는데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며, 진입로 주변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준비 중인 ‘특별경관 관리대책’을 빨리 마련해서 주위의 경관도 보존하여 울산에 취약한 관광자원으로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지난 6월5일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 인근에서 약 1억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로 추정되는 시기의 사족보행 척추동물의 발자국 화석 18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는 기존 문화유산과 함께 공식 신청한다면 충분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다고 본다. 아~그런 건 다 모르겠고, 나는 더 이상 물고문 받기는 정말 싫어!

이기원 울산경제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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