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민주주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의 연합이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필두로 코린트, 테베 등 수많은 도시들이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그 중에서도 고대 민주주의의 토대는 단언 아테네에서 이루어졌다. 테미스토클레스, 페리클레스 등과 같은 리더들의 활약과 아테네 시민 특유의 진취성이 더해져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할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그들이 민주주의를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고, 또 그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흔히들 민주주의를 평화와 결부시키곤 한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는 평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스 전역에 다툼은 일상다반사였다. 오죽했으면 평화를 도모하고자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올림픽을 고안했겠는가? 도시별로 보자면 왕정국가인 스파르타보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그리스의 내부사정이 더했다. 그리스인들은 모였다 하면 논쟁했고, 때때로 언쟁이 되기도 했다. 심포지엄 등과 같은 토론의 개념들이 그리스에서 비롯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또한 그리스의 리더들은 각기 다른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시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연설은 물론 호된 질책을 들어야 했으며, 도편추방을 통해 탄핵 또한 수시로 이루어졌다. 매년 투표로 지휘관인 스트라테고스에 선출되어야 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음은 덤이다. 그렇다면 외부는 물론이거니와 내부적으로도 다툼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던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도대체 우리는 왜 닮아가려 하는 걸까?

그 핵심은 바로 소통을 통한 조화에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권을 가지는 것이 핵심이다. 시민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곧 표현의 자유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는 이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상황을 그리스인들은 토론으로 풀어갔다. 때로는 비생산적이고, 때로는 그 결과가 참혹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끊임없이 소통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통해 이질감을 극복하여 조화를 이루어냈으며, 페르시아 전쟁 등과 같은 외부의 시련에도 서로 힘을 합해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리스 이후의 유럽은 어떻게 됐을까? 알렉산드로스를 거쳐 로마에 제정이 도입되면서 민주주의는 소멸됐다. 그리고 그리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평화의 개념이 적극 도입된다. 바로 로마에 의한 평화, ‘팍스 로마나’가 그것이다. 결국 로마시대 평화는 제정이라는 독재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졌다. 국가의 일방적 행위에 시민들은 침묵했고, 비로소 침묵의 평화가 완성된 것이다.

오늘날도 결코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는 항상 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평화를 목적으로 시민들의 목소리를 묵살하여 갈등을 제압하기도 하고, 또 소통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자 하기도 한다. 전자는 쉽지만 후자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전자를 통해 너무도 쉽게 평화를 도구로 악용한다. 평화는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 평화는 민주주의를 추구함으로써 따라오는 수많은 산물 중 하나이다. 우리도 더 이상 쉬운 길을 가선 안 된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묵살했던가. 소통을 통한 조화! 이것이 곧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우리가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 할 궁극의 가치가 아닐까?

서정민 울산문화재단 기획경영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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