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형석 경제부 기자

“특정 시기에 일이 몰리는 생산직도 일률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인력 운용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네요.”

다음달 1일부터 300인이상 기업부터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시간 단축법’ 시행을 앞두고 울산지역 산업계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단 ‘6개월 계도’라는 결정에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이지만, 특정시기에 일이 몰리는 업종의 경우 해법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표적 업종이 정유·석유화학업종으로 이들 업종은 2~3년마다 진행하는 정기보수기간에 인력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 지 고심하고 있다. 대규모 정기보수 소요시간은 주 80시간인데, 주 52시간 근로제를 시행할 경우 보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는 생산직 근로자들이 4조 3교대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정기보수기간에는 2조 2교대, 한 주당 최대 84시간 근무가 불가피하다는게 업계 중론이다.

지역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보수업무라는 일의 특성상 특정기간에 집중해서 해야하는데 만일 주 52시간을 적용하게 되면 보수기간이 어쩔수 없이 길어질 수 밖에 없고, 보수도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유업체 관계자도 “정비가 지연될 경우 하루에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하고, 추가 근로자를 채용해도 미숙련 근로자의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들은 이렇게 되면 근로자 추가 고용 등에 있어 업무 유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정규인력 채용보다는 결국 아웃소싱(외주화)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주 52시간’ 시행에 따른 또 다른 부작용이 우려되는 셈이다. 또 일부 기업들은 교대 근무제 조정과 임금문제 등을 놓고 노사간 협의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업계도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현대중공업은 단축 근무제에 대비해 퇴근 시간이 지나면 직원 PC 전원을 강제 종료하는 등의 새 근무체제를 도입키로 했으나 이는 근로시간 준수가 용이한 사무직이 주로 해당되는 것으로 일부 직종에서는 해법 찾기에 고심중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박 시운전 근로자의 경우 최대 3주 동안 바다에서 각종 검사를 해야 하는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이 길고, 근무자 교대 자체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역 건설업계도 고민이 크다. 건설 현장의 공사비는 늘고, 근로자의 임금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연구원 분석을 보면 52시간 근로제로 건설현장 총공사비는 평균 4.3% 증가하고, 최대 14.5%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뜩이나 건설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 건설업계로서는 업친데 덮친격이다.

대기업보다 중소·중견기업들은 사정이 더 나쁘다. 성수기에 일감이 집중되는 300인 이상의 중소·중견기업들은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역 중소기업 관계자는 “현대자동차나 현대중공업의 1, 2차 협력업체들은 모기업의 업황에 따라 일감 변동이 심하다. 근로시간 단축제가 울산지역 산업현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경쟁력 하락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울산상공회의소가 지난달말 청와대와 국무조정실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와 특례업종 추가’ 등을 건의한 것도 이러한 지역 산업계의 우려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노동자의 삶의 질 높이기와 생산성 향상, 고용창출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자칫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결과가 생기지 않을까 상공계와 산업계는 내심 걱정하고 있다.

차형석 경제부 기자 stevech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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