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증원·정치권력과 유착배제
국민불신 초래 외부요인 개혁등
사법부 신뢰회복에 적극 나서야

▲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전통의 투혼 축구로 독일에게는 물귀신이, 멕시코에게는 구세주가 된 한국팀이 귀국했다. 아쉽게도 한국은 스웨덴과의 1차전에서 처음 도입된 비디오 판독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하는 바람에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심판에 대한 불신 논란은 축구계뿐만 아니라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의혹으로 법원에서도 야단법석이다.

삼권분립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법하에서 국회의원과 대통령은 국민이 투표로 선출하지만 대법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선출되지 않은 국가권력이 정의를 선언하고 개인과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사법작용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사법 권력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선뜻 법관 선출제를 두지 못하는 것은 사법부에 불어 닥칠 정치 바람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법관은 정치권력, 여론, 개인적 인연, 부정부패 등으로부터 철저히 독립해 재판할 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 울 수 있다. 이에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성의 심각한 침해가 우려될 때마다 현직 판사들이 집단행동을 벌이는 이른바 사법파동이 몇 차례 있었다. 1971년 서울지검에서 부장판사를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판사 150명이 공안사건의 무죄 판결에 대한 정권의 보복 조치라며 집단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이를 제1차 사법파동이라 하는데 이후에도 세 차례의 사법파동이 더 있었다. 이번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의 사법권 남용 의혹을 둘러싸고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3차에 걸친 특별조사 후 문건 일부를 공개하면서 구체적인 재판권 침해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다고 발표했음에도 문건의 전면적인 공개와 관련 법관의 수사를 촉구하는 소장 판사들의 요구가 이어지자 대법원장은 이미 고발된 부분의 수사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앞으로 검찰 수사의 결과에 따라 이번 사법파동은 엄청난 국면을 맞을지도 모르는 혼돈의 상황이다.

이번 사법파동의 특징은 새로운 정권에 의해 임명된 진보성향의 대법원장과 그와 같은 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주도하고 있어 판사들의 정치 성향에 따른 파벌싸움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과 법관들이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심판을 통해 뼈를 깎는 자정노력을 포기하고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대법원장이라 해도 명백하고 구체적인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를 받고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전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 전반을 검찰 수사에 맡기는 발상은 또 다른 형태의 사법권독립 침해를 자초한다는 우려를 피할 수 없다.

이번 사법파동의 거센 후폭풍도 사법개혁으로 이어질 때 그 의미가 부각된다. 재판의 기준은 헌법, 법률 그리고 양심이다. 헌법과 법률은 일응 객관화돼 있지만 양심은 극히 주관적이라 법관에 따라 판결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의 양심은 개인의 주관, 소신, 정치적 성향, 철학, 취향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적 상당성을 가진 객관적 양심으로 보는 것이 전문가 견해다. 법관은 사회적 지위가 주는 오만과 독단의 유혹을 뿌리치고 재판의 준거로서의 객관적 양심을 확립하는 노력과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혹여 법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취향을 양심이라 착각하고 선악을 재단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법관의 개인적 정진과 아울러 ‘격무를 줄여 신중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법관의 과감한 증원’ ‘법관 선발의 투명성 확보’ ‘코드 인사로 속칭되는 정치 권력과의 유착 배제’ ‘무전유죄 풍조를 낳은 전관예우 의혹 불식’ 등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는 외부적 요인에 대한 개혁 작업도 뒤따라야 한다. 특히 법원 내에 법관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연구모임이 존재하고 이것이 파벌을 조성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일이다. 전 대한변협 회장에 대한 사찰의혹에 대해서도 대한변협은 규탄성명 정도의 일과성 대응에 그칠 것이 아니라 사법개혁의 의제를 공론화하고 제도화를 촉구해 사법부의 신뢰회복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재판받기보다는 비록 오판이 있어도 신뢰받는 법관으로부터 재판을 받는 것이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 아니겠는가.

신면주 울산변호사회 회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