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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그림이 있는 에세이
[그림이 있는 에세이]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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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05  21: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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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행(임수빈作)-나의 이상향 유토피아(Utopia)는 분홍색이다. 유토피아로 향하는 길이 아무리 고단해도 같은 목표를 가진 동반자가 있다면 결코 힘들지 않을 것이다.

백성들의 희생 막기 위해
신라에 나라 바친 가야왕
땅잃고 돌무덤에 묻혔어도
백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
요즘 정치인에게 필요한
진정 국민을 위한 마음 아닐까


봄산의 연두색이 물러나고 새로운 시간의 빛으로 바뀌는 계절, 금계국의 노랑은 알맞게 황홀하다.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에서 약간 벗어난 그저 평범한 골짜기, 보잘 것 없는 능선이 비좁은 계곡을 그리며 흘러가고 있는 곳에 표지판이 있다. 한낮의 뙤약볕과 개망초 흐드러진 길을 잠깐 오르자 보이는 왕릉. 화려한 철기문화의 꽃을 피웠고 낙동강 유역의 최대 세력으로 자리하였던 가야국, 그 마지막 왕의 무덤이 왕산자락에 한낱 돌무더기로 남았다.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적힌 비석이 야트막한 돌담장으로 에워싸인 무덤 앞에 세워져 있다. 흔히 보았던 초록의 잔디로 뒤덮인 왕릉이 아니라 그저 시꺼먼 돌들이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높이를 만들고 있다. 경사진 언덕의 중턱에 수만 개의 잡석으로 일곱 단을 쌓아 올린 다음 정상부엔 타원형의 봉분을 높이 쌓아 놓았다. 얼핏 장군총을 닮기도 한 것 같지만 또 다르고, 신라나 백제의 무덤양식과도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는 한국판 피라미드라고 하기도 한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신라 법흥왕의 침공을 받게 되자 장졸을 이끌고 나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사상자가 속출하고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왕은 신라가 원하는 것은 결국 가야의 땅인데 이 땅을 지키려고 사람을 다치게 할 수는 없다며 스스로 나라를 신라에 양도하였다고 한다.

“나는 사람을 기르는 국토 때문에 백성 해치기를 원하지도 아니하고, 또 차마 종사(宗社)가 나에게서 상실되게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 일이 결과적으로 신라가 한반도 전체를 통일하는 기초가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록들은 조금씩 다르다.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국고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했다’고 적고 있다. 이 표현은 구형왕이 신라와 혈전을 벌이다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라를 바치고 항복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나라를 신라에 양보했다고 해서 양왕이라는 이름이 비석에 새겨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록이 자세히 전하지 않아 항복의례가 어떠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라 역사에서 활약했던 김유신이나 김춘추 등을 보면 융숭한 대접이었지 비굴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승자의 시점으로 기록된 역사,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과 슬며시 비교하고 싶기도 하다.

또 다른 기록인 삼국유사에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시간을 왕이 쳐들어오매 왕이 친히 군졸을 부려 싸웠으나 저편은 많고, 이쪽은 적어서 대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복하였다’고 적혀 있다. 가락국기 역시 ‘신라 제23대 법흥왕이 군사를 일으켜 가락국을 치니 왕은 친히 군졸들을 지휘했으나 저편은 군사가 많고 이편은 적어 맞서 싸울 수가 없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나라를 들어 바친 것이 아니라 싸우다가 어쩔 수 없이 항복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금관가야가 멸망한 지 4년 후 왕은 “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어찌 흙에 묻힐까. 차라리 돌로 덮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승하하자 신하들이 그대로 하여 지금의 돌무덤이 전한다고 한다.

맹자 양혜왕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옛날 태왕이 빈에 거주하실 때 추인이 쳐들어오자 그들이 원하는 것은 토지이니 그 땅을 떠나 기산 아래로 가서 도읍을 만들었다고. 토지는 사람을 기르는 것인데 토지를 가지고 사람을 해칠 수 없다면서.

조금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이순신이 왜구와 싸울 때 왜선 마지막 한두 척은 꼭 남겨두어 그들이 도망을 갈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도망을 못 간 왜구는 결국 육지로 올라와 백성들을 해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정작 요즘의 우리 정치인에게 필요한.

역사의 평가가 어떠하든 선택의 기회 앞에서 자신의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면 그 최선은 존중 되어야 마땅하며 강자의 논리로 그것에 관여하여 사소하거나 가벼워져서는 안 되리라. 구형왕릉은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도 않고 흔적을 남기지도 않았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넓어져가는 고요가, 하얘져가는 평온이 오후의 햇살 아래 가만히 퍼지고 있다.

   
▲ 김명숙씨

■ 김명숙씨는
·시인
·2004년 <좋은 문학> 등단
·울산문인협회 회원

 

 

 

 

 

   
▲ 임수빈씨

■ 임수빈씨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졸업
·울산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3회
·그룹전 74회
·분당서울대병원, 아트쇼부산 작품 소장
·2015년 KT통신130년 융합예술작품공모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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