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봉 사회부차장

울산의 방사능방재 매뉴얼에 대한 지적이 많다. 감사원은 지난달 원안위 감사에서 울산시와 각 구·군이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밖에 구호소를 지정하지 않았다고 통보했다.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역시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 구호소가 대부분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내에 지정돼 있어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방사능비상계획구역은 원전에서 방사능이 누출됐을 때를 대비해 피해 거리를 예측하고 미리 대피소나 방호물품, 대피로를 준비한 구역을 말한다. 당초 원전을 중심으로 반경 8~10㎞ 수준이었지만 지난 2014년 5월 방사능방재법이 개정되면서 반경 20~30㎞까지 확대됐다. 울산시는 비상계획구역을 최대치인 30㎞로 설정했고, 이에 따라 시 전체 면적의 55%와 43%, 전체 인구의 84%와 88%가 각각 고리원전과 월성원전 비상계획구역 내에 포함됐다. 고리원전 사고 시 서울주 일부 주민과 북구 일부 및 동구 일부 주민이 반경 30㎞ 지점에서 벗어나게 되며, 월성 원전의 경우 울주군 일부 지역만이 비상계획구역 밖에 위치하게 된다.

비상계획구역을 최대치로 설정함에 따라 몇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재민들이 임시로 거주하게 될 구호소 지정이다. 고리원전 사고 시 90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주거지를 떠나 대피해야 하는데 서울주 및 북구 일부 지역에는 이재민을 수용할 만한 시설이 충분치 않다. 이에 따라 시와 각 구·군은 원안위의 지침에 의거, 30㎞가 아닌 20~30㎞ 지점 사이에 구호소를 대거 지정했다. 이는 인근 원전 소재지인 부산과 확연히 대비된다. 부산시는 비상계획구역을 최소치인 20㎞로 설정했고, 관내에 구호소를 모두 지정할 수 있게 됐다.

결국 구호소 관련 문제는 울산시가 비상계획구역을 30㎞로 설정함에 따라 발생한 것인데, 일본 후쿠시마 사고 때 주민 대피령이 내려진 구역이 30㎞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를 탓할 일은 아니다. 비상계획구역 확대 후 실효성 있는 구호소 지정을 위해 시와 각 구·군은 적잖은 노력을 해 왔고, 특히 30㎞ 밖 구호소 지정에 대한 필요성과 함께 현실적 애로를 확인했다.

타 시·도에 구호소를 지정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장비는 물론 타지 주민의 정서 등 고려 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시는 몇 년 전부터 부산이나 경남, 경북 등과 협의를 추진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이재민들을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려는 난민 취급하는 지자체도 있었다고 한다. 원전에서 멀리 떨어진 지자체의 거부감은 이해한다 치더라도 원전 소재지인 경북과 부산까지 미온적인 부분은 생각해 볼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중재와 노력이 절실한데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시와 구·군은 인근 지자체 구호소 지정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수차례 촉구했지만 아직까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원전사고 발생 시 인근 지역은 전시상황에 맞먹는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원전사고는 일개 지자체가 감당할 수준을 뛰어넘는 국가적 문제다. 원전은 위험한 시설이지만 원자력발전을 당장 그만둘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안전대책을 최대한 마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지자체의 한계가 뚜렷하다면 국가가 나서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 국가재난사태에 있어 어느 한 지자체가 을이 돼서는 안된다.

이춘봉 사회부차장 bong@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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