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보호 최후 보루인 법원이
재판거래 의심에 위기 맞았지만
혼신다해 묵묵히 재판 수행해야

▲ 전기흥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법조 3륜’이라는 말이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법조를 지탱하는 세 바퀴라는 의미이다. 이들 중 검사, 변호사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판사는 그렇지가 않다. 아마도 드라마 작가는 판사가 하는 일이 검사나 변호사가 하는 일에 비해 역동적이지 않고 드라마적인 요소가 적다고 생각하여 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 않는 듯하다.

그런데 최근 현직 판사가 작가가 되어 판사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전격 등장시켰다. ‘미스 함무라비’를 처음 몇 회 보고나서 과연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서 어떤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법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시청률이 꽤 괜찮게 나왔다.

판사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물론 재판이다. 재판은 보통 일주일에 한 두 번 하는데 여러 건의 사건을 시차제로 진행한다. 나머지 날에는 주로 사무실에서 재판 준비를 하는데, 방대한 소송기록을 읽고 쟁점을 파악하고 법리를 연구하고 판결문을 쓰는 것이 주된 일이다. 일주일 단위로 이와 같은 패턴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판사가 등장하는 공간이 주로 재판을 하는 법정이었다면, 미스 함무라비에서는 판사가 사무실에서 매일 같이 야근하며 두꺼운 기록에 파묻혀 고민하고 논쟁하면서 재판 준비를 하는 모습을 비교적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재판을 일주일에 한 번 한다고 하면 주 1일 근무하냐며 놀라워하던 지인들에게 이 드라마를 보여 주고 싶다. 대부분의 판사는 재판 자체보다 재판 준비하는 것을 더 힘들어한다.

이 드라마는 법원에도 어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는 것을, 즉 출세만 생각하는 판사, 비리 저지르는 판사, 인격이 형편없는 판사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법원에 만연해 있는 낡은 서열주의 문화 등 법원의 치부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어떤 장면에서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하기도 했다. 드라마가 정의롭고 이상적인 모습의 법원과 판사만을 다루었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보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전 무거동에서 오랜 고향 친구들과 곰장어에 소주 한잔 했다. 거의 30년 만에 만난 친구도 있었다. 그저 반가웠다.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미스 함무라비’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 3명이 모두 이 드라마를 챙겨 본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기록을 산더미 같이 쌓아놓고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살아가는 판사들의 모습이 멋있어 보인다고 친구들은 각자 한마디씩 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파고들 때 그 사람은 멋있어 보이기 마련이다. 피아니스트가 소나타 한 곡을 공연에 올리기 위하여 치밀하게 악보를 분석하고 피나도록 연습하는 모습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친구들은 나에게 멋있는 판사가 되어줄 것을 당부했다.

요즘 법원이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져있다. 법원이 재판을 도구 삼아 정권과 거래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는 참담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법원이 인권의 최후 보루이기를 바라는 국민의 실망이 엄청나다.

지금은 법원이 국민의 준엄한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할 때이다. 수사가 진행되고 있고 제도 개선도 뒤따를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일선에 있는 판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국 법원에 흩어져 있는 3000명의 판사는 각자 맡고 있는 분쟁 사건에 대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묵묵하게 재판을 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

미스 함무라비의 한세상 부장판사, 임바른 판사, 박차오름 판사의 좋은 모습을 두루두루 갖춘, 통찰력과 차가운 판단력과 따뜻한 가슴을 겸비한 멋있는 판사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성찰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전기흥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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