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립미술관 건립을 일단 중단한 울산시가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미술관 건립이 6개월~1년 가량 지연될 조짐이다. 미술관 건립이 늦어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 이유가 민선 7기 시정철학과 충분한 시민여론 반영이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공론화 의제가 건축설계와 운영방안이라니, 새삼 공론화가 왜 필요한지도 혼란스럽다.

울산시 문화체육국장은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시립미술관 건립 공론화 추진절차에 대해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민선 7기 시정철학과 시민여론이 충분히 반영된 개선안 마련’이다. 시립미술관에 시정철학을 반영한다는 것은 애초에 어불성설이다. 시립미술관은 시정철학이 아니라 시민적 요구와 세계 미술의 흐름, 울산시의 현실, 전문가의 판단 등에 의해 설계와 운영방향이 결정돼야 하는 순수문화공간이다. 의제는 건축설계와 운영방안이며 입지변경은 검토하지 않는다고 했다. 건축설계와 운영방안을 토론하자면 굳이 건립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할 이유가 없다. 2011년부터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여론수렴을 해왔으며 시행사를 선정한 다음에도 얼마든지 여론수렴을 해서 반영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울산시는 지금이라도 공론화 의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알다시피 공론화는 문재인정부가 고리원전 5·6호기 건립여부를 두고 진행했던 방안이다. 찬반으로 나눠진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 최종 결정 수단으로서 유용했다. 지금 울산시립미술관 건립과 관련해서 추가 공론화가 필요하다면 그 의제는 입지를 ‘울산초등학교 부지로 확대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계획대로 중부도서관 부지에 지을 것인가’를 두고 양자택일이 돼야 한다. 울산시는 울산초등부지로 확대하는 것은 입지변경이 아니라고 전제하고 있는 듯한데 아마도 원도심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입지를 옮기는 것으로 논의가 확대돼 지역사회의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지 않을까라는 공연한 우려 때문으로 보여진다.

울산초등학교 부지로 확대하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다만 확보된 국비를 당해연도에 사용하지 않으면 반환해야 하는 문제에 걸려 서둘러 결정을 했을 뿐이다. 문화재청을 설득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혹여 문화재청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괜히 시간과 국비만 날렸다는 비판을 받을까 우려했던 것이다. 공모를 통해 건축설계까지 마련된 현 시점에서 다시 공론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입지변경에 따른 설계비 낭비와 시간 지체에 대한 시민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 유일한 이유일 수밖에 없다. 조지오웰은 그의 저서 <정치와 산문>에서 ‘멀쩡하고 구체적인 어휘를 놔두고 애매하고 완곡한 표현이 득세하면 진리와 정의도 사라진다’고 했다. 공론화의 이유와 의제를 분명히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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