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 수행할때 쓰는 죽비처럼
우리사회에도 소통의 신호를 보내
원칙과 질서 잡는 죽비소리 들려오길

▲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죽비란 스님들이 불교의식이나 행사 때에 쓰는 대나무로 만든 법구를 말한다. 약 40~50cm 정도의 통대나무를 3분의2 정도는 가운데를 쪼개어 양쪽으로 갈라지게 하고, 가르지 않은 부분은 손잡이가 되는데 이를 잡고 갈라진 부분으로 손바닥을 치면 ‘착’하는 소리를 내는 도구이다. 죽비 소리는 대중의 행동을 통일하거나 참선을 할 때 신호로 사용되며, 선방에서는 경책사(警策師)가 수행자를 지도하며 졸지 말라고 등을 내리칠 때 쓰이기도 하는데 약 2m의 큰 죽비는 장군죽비라 부른다. 단순한 도구이지만 수행자의 행동을 통일하고 과정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의식을 일깨워 주는 그 쓰임새를 볼 때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 이상의 깊은 뜻이 깃들어 있을 법도 하다.

불교에서 출가한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 외출을 금하고 수행하는 제도를 안거(安居)라 하는데, 우기에 행각을 하다가 폭풍우에 희생되거나 초목과 벌레들을 살상하여 비난을 받는 일이 있어 여름 외출을 금하고 수행을 하게 한 것이 안거의 기원이라 한다. 요즘에는 절기나 계절, 사회적 현안과 연계하는 다양한 안거가 행해지고 있으며 스님들만의 고유한 영역을 뛰어넘어, 일상에 쫓겨 차분히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돌아보기 어려운 직장인들과 주부들은 물론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참여하는 재가안거로 확산되고 있다. 안거의 의미는 현실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찾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니 저마다의 화두를 찾아 지혜롭고 절제하는 삶을 깨닫는 의미 있는 안거를 모색해 볼 일이다. 안거가 끝나는 다음 날을 ‘자자(自恣 스스로의 잘못된 점을 반성함)의 날’이라 하였으니 반드시 큰 깨달음이 있으리라.

요즘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알아두어야 할 말들이 많은데 ‘미투’를 비롯하여 ‘워마드’와 ‘퀴어’까지는 알아야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정도이다. ‘가상화폐’나 ‘블록체인’과 ‘매크로’와 같은 논제들은 이론적 논리나 기술적 입증을 통해서 주장의 간극을 좁히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갈 수도 있겠지만, 특정 단체나 조직의 ‘주의·주장’들과 마주하게 되면 괜히 조바심을 느끼게 되며 ‘다양성에 대한 인정’의 입장만 밝히고는 얼른 한 발 비켜서게 된다. 정치적인 문제라면 아예 말을 섞지 않거나 화제에서 미리 발을 빼는 것이 상책일 때가 많다. 주장이 강할수록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일면이 있어 이해와 공감을 위한 노력보다는 불필요한 논쟁과 반목만 가열되는 ‘불통의 시대’가 지속되는 형국이다.

늘 반복되는 지적이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컨트롤타워나 소통체계의 부재는 물론이거니와 공통된 절차나 통일된 신호가 없으니 사회가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아닐까. 대나무 막대 하나로 졸음과 망상을 일깨워 주고 죽비소리 만으로도 대중의 행동을 통일시켜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종교적 의미를 떠나 혼미한 사회를 일깨우는 오늘날의 ‘죽비’는 무엇이고 ‘장군죽비’를 들고 나설 경책사는 누구일까. 이래저래 ‘사회적 안거’가 필요한 오늘이다.

요즘의 정치권과 사회는 폭염처럼 뜨겁고 열대야처럼 후텁지근하다. 정책과 제도는 앞서가는데 정작으로 국민들은 저마다의 셈법에 따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뜨거운 여름날의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아닌 열대야를 이기는 하안거( 夏安居)의 지혜와 원칙과 질서를 조용히 바로잡는 죽비소리를 기다려 본다.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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