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필요로 하는 울산시립미술관은
시민이 여가와 문화를 즐길수 있는 공간
미술·도서관 복합문화공간 고려해볼만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울산시 중구 공영주차장 옥상에 올라가면 가림막으로 가려진 옛 울산초등학교 내부가 한눈에 보인다. 지열이 구불구불 올라오는 빈터엔 잡초만 무성하다. 그 옆은 시립미술관 부지다. 동헌도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눈으로, 생각으로, 미술관을 짓는다. 십수년동안 수십번도 더 했던 상상의 나래가 따가운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 발동을 건 것이다. 동헌에서 울산초등학교까지 넓다란 부지에 일본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을 옮겨다 놓기도 하고,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을 데려오기도 한다. 욕심은 뉴욕과 빌바오의 구겐하임, 파리의 퐁피두까지 벋친다.

하지만 현실은 야속하다. 북정공원과 중부도서관을 합친, 세로로 길다란 부지에 연면적 1만2400㎡ 지하 3층·지상 2층이 현실적 공간이다. 예산은 잘 나가는 작가의 조각품 2~3개 가격에 불과한 734억원이 고작이다. 고개를 흔들어 ‘큰’ 상상을 털어내고 ‘작은’ 현실을 직시하며 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설계를 예정부지에 앉혀 본다. 상대적으로 툭 튀어나온 모양새가 어색하긴 하지만 좌우에 자리한 동헌과 울산초등학교 부지를 하나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면 나쁘지 않은 그림이 그려진다.

일단 동헌의 담장을 허문다. 마루에 놓인 ‘올라가지 마시오’라는 거만한 안내판을 치우고 동헌과 내아 건물은 그대로 아트숍으로 활용하거나 내부를 단장해서 한국화관으로 꾸민다. 주민들의 발소리·손때와 함께 새롭게 늙어가는 ‘오래된 미래’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물지만 유럽에선 궁전이 미술관으로 활용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울산초등학교는 가림막부터 걷어낸다. 객사의 유구는 있는대로 드러나게 해서 강화유리로 덮는다. 울산시립미술관에 영구전시(Permanent Exhibits)되는 ‘1호 소장품’으로 손색이 없다. 운동장은 야외조각공원으로 차츰 만들어나간다. 매년 국제설치미술제 등을 통해 한두점씩 확보하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큰 예산없이도 가능하다. 굳이 돈 들여 커미션워크(Commission Work)를 할 필요도 없다. 추후 미술관 수요가 늘어나면 객사 유적지 위에 필로티(Pilotis)를 세워 2, 3층을 지으면 미술관 확장도 어렵지 않다. 객사 복원을 고집하지만 않는다면 전국에서 가장 개성 있는 미술관이 되기에 충분하다. 안기부터에 예정된 중부도서관과 연계하면 복합문화공간으로서도 더할 나위가 없다.

상상은 새 시장이 취임하면서 달라진다. 새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시립미술관 건립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시정철학 반영과 여론수렴이 이유라고 한다. 건축설계와 운영방법에 대해 공론화를 하겠단다. 예산낭비와 시간지체에 대해서는 시민적 동의를 구해야겠지만, 입지라는 분명한 문제점을 두고서 공연히 시정철학이니 운영방법이니 에둘러 공론화를 할 필요는 없다. 애매모호한 공론화 설명에서 그나마 구체적인 것은 “울산객사 부지 쪽으로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어차피 상상은 자유다. 다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상상력 부족인가. 앞서 상상했던 미술관에서 개념상으로는 그다지 바뀌지 않는다. 다만 처음부터 옛 울산초등학교까지 입지를 넓힌다면 지금보단 훨씬 건축물의 짜임새를 확보할 수 있어 좋다. 옛 울산초등학교 부지는 애초에 공정한 경쟁과 여론수렴을 통해 선정된 미술관 부지라는 점에서 새삼 공론화도 필요치 않다. 문화재청 설득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만약 울산초등학교 부지를 확보하게 된다면 아예 중부도서관 신축예정부지와 동헌까지 포함해 미술관·도서관 복합문화공간으로 계획을 수정하고 개념설계부터 다시 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미술관은 미술을 위한 엄숙한 공간이 아니다. 시민들이 여가와 문화를 쉽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광장과 같은 문화공간, 문화예술을 통해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적 공간이 필요하다. 주객(主客)이 전도된 것 같지만 놀러 가서, 식사하러 가서, 친구 만나러 가서 미술도 즐기는 건 어떨까. 客(식당, 편의시설, 옥외공간 등)이 중요하게 고려된 공간이 오히려 主(미술관)를 살리지 않을까 싶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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