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바람 타고 급전개된 도시화
그동안 외면했던 부작용들에 주목
이젠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 바꿔야

▲ 최연충 울산도시공사 사장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상을 바꾼 바람이라면 아마도 제갈공명이 부른 동남풍이 아닐까. 서기 208년 조조의 백만대군을 맞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던 손권과 유비가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켰던 적벽대전, 그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바로 바람이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공명이 하늘에 간절히 빌어 동남풍을 불러왔다고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기압골의 영향으로 북서풍이 잠깐 동남풍으로 바뀌었던 것이고, 천문에 밝았던 공명이 이를 정확히 예측했을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이 동남풍에 힘입은 화공으로 조조군은 대패해 물러났고, 이후 위·촉·오가 팽팽하게 맞서는 이른바 천하삼분의 형세가 굳어지게 된다.

지난달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방선거를 지켜보면서 또 다른 바람의 힘을 절감했다. 세상을 바꾸었다는 점에서는 적벽대전의 동남풍과 다를게 없다. 차이가 있다면 오늘의 바람은 자연풍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속의 바람이요, 또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도도한 흐름이라는 점이다. 이 바람은 곧 변화를 희구하는 민심일 터인데, 그 위력은 가늠하기 힘들 만큼 엄청나다. 그동안 선거 판도를 좌우해왔던 지역, 도농, 빈부, 세대, 학력 등 모든 요인들을 쓸어가버릴 정도의 강풍이다.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어내고 사회 전반에 걸쳐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어나가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도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도시에는 과연 어떤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으며 도시의 미래는 어떻게 바뀌어갈 것인가. 한번 짚어보자.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성장 발전해온 서구 도시와는 달리 우리의 도시 역사는 일천하다. 조선시대까지는 아예 근대적 의미의 도시라 부를 만한 곳이 없었고, 해방 무렵을 봐도 서울과 몇몇 식민시대 수탈 거점만이 겨우 도시의 면모를 띠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근대화의 물결을 타면서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1960년 39%에 머물러있던 우리의 도시화율은 불과 반세기만에 91.8%에 이르게 되었다. 사실상 거의 전 국민이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이적인 성장세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은 이들 도시를 중심으로 구축된 생산기반과 물류, 서비스망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지금까지 도시를 설계하고 개발해온 과정을 되돌아보면 많은 무리수가 있었던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 삶의 터전인 도시는 긴 호흡으로 가꾸어가야 함에도 때로는 부동산정책의 곁가지 정도로 다루는 우(愚)를 범하진 않았는지?

일례로 1990년대초 수도권에 조성했던 5개 신도시는 ‘200만호 주택건설’ 구호에서 보듯이 당시의 투기 광풍을 잠재우기 위해 허겁지겁 내놓은 주택정책의 산물에 다름 아니었다. 개발제한구역도 당초 취지와는 달리 세월이 지나면서 행정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훼손되고 있는데, 과연 이대로 제도를 끌고갈 것인지? 도시개발 과정에서 토착 주민들이 강제로 밀려나지 않도록 얼마나 제도적으로 배려하고 보듬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행정청은 공공사업을 명분으로 내세워 토지수용 만능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개성도 특색도 없이 도시가 온통 회색의 아파트 숲으로 변해가도 좋은지? 그동안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던 문제들을 꼽자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젠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도, 도시를 만들어가는 과정도, 도시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흐름이 지속된다면 도시의 미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고 스마트시티가 다가오면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도시에 불어오는 바람, 설레는 한편 두렵기도 하다.

최연충 울산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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