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리는 풍요의 기반을 닦은
노인세대들이 복지혜택 받는건 당연
강팍한 세상 노인들에 화살 겨눠서야

▲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지하철 노인석 근처에 서서 가는데, 옆에서 젊은이 둘이 대화를 나눈다. 한 친구가 “경로우대 무임승차로 인해 지하철 적자가 장난 아니래.” “지하철뿐이 아냐. 고궁·박물관 공짜지, 영화도 반값이지, 암튼 노인복지가 엄청 좋아졌대. 이거 모두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메꾸는 거 아냐?” 노인들 때문에 자기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대화는 이어진다. 목소리를 낮추어 얘기하는데도 내 귀엔 천둥처럼 들린다. 나는 듣다못해 ‘자네들은 지금까지 국가에 얼마나 세금 냈나? 나는 지난 40년간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금을 냈어. 그리고 이 지하철 누가 만든 지 알아? 이 풍족한 세상 누가 만든 지 알아? 지금의 이 세상을 만들어 온 과정에 전혀 기여하지도 않은 자네들이 마치 당연한 듯이 만끽하는 것이 나는 엄청 못 마땅해’라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17년 만의 최고실업률에 청년실업률은 12%를 넘었단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일자리가 남아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반해 우리만 깊은 늪 속을 헤매고 있다. 우리는 엄청난 국가재정을 쏟아 부으면서까지 임금인상을 강제하는데, 일본은 기업스스로 사상 최대 임금인상률을 기록 중이란다. 젊은이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노인들을 향한 그들의 말이 이해 안 가는 바도 아니다. 정부의 하수(下手)플레이에 괜스레 노인들에 대한 불만이 생긴 거다. 그러나 젊은이들 최소한 이런 사실쯤은 알고 감이 좋겠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인들, 젊었을 때 정말 일자리가 없었다. 일자리가 있다 하더라도 월급이 적어 하숙비조차 충당할 수 없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어렸을 땐 전쟁후의 참상(慘狀) 속에서 미군들에게 초콜릿을 구걸하며 보릿고개를 견뎌냈고, 깡 보리밥, 수제비로 하루 두 끼 겨우 먹으면서도, 토요일, 일요일 없이 하루 열너댓 시간씩 군소리 없이 일하면서 버틴 사람들이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엔 설거지 아르바이트로 받은 품삯을 부모동생들을 위해 톡톡 털어 보탰고, 결혼하면 집주인과 부엌,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단칸 사글세방에 사는 걸 당연히 여겼다. 김치 한 조각에 탄산가스 잔뜩 들은 카바이드 막걸리 한사발로 괴로움과 고단함을 달랬었다. 미군으로부터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기위해 목숨 걸고 베트남전쟁 파병을 자원했으며, 독일의 탄광에서, 열사의 사막에서 막노동을 했던 사람들이다. 자기 머리카락 잘라 팔았으며, 피를 파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부모로부터의 유산(遺産)? 임금투쟁? 그런 말은 사전에나 있는 단어였다. 나라가 잘되어야 나도 잘되는 줄 알고 묵묵히 실천했던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계가 놀랄 만한 지금의 대한민국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 어느 나라 노인들보다 고생을 많이 한 그들은 이제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공짜로 타는 게 미안해, 젊은이들 좌석 쪽은 피하고 노인 석 주변에 웅기중기 몰리며, 복지혜택 받는 게 쑥스러운지 어깨를 움츠린다. 아무튼 너무도 압축적인 성장을 이루었기에 뒤늦게나마 풍요를 살짝궁 경험하는 행운도 얻었지만, 이를 누리기에는 남은 세월이 길지 않아 안타깝다.

이런 얘기를 젊은이들에게 할라치면, 그들은 대체로 ‘So What?(그래서 어쩌라고?)’하며 귀를 막는다. 물론 개인에 따라 사정은 다르지만, 절대빈곤이 어떤 건지 알 턱 없는 젊은이들은 좋은 일자리 없다고 투덜댄다. 옥외에서 작업복 입고 일하기보다 빵빵한 에어컨디션 아래 대리석 위에서 커피 마시며 일하기를 바라는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대도시 주변에 신혼 살림할 아파트 한 채 마련할 수 없다고 투덜댄다. 서른 살이 넘어도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세뱃돈 받고, 용돈 타 쓰는 젊은이들을 어렵지 않게 본다. 세월이 지나고, 세상이 좋아졌음에, ‘젊은이들이여, 옛 사람들처럼 살라’는 것은 무리겠지만, 적어도 여태껏 고생했던 노인들의 삶을 이해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이들이여, 정이 불행하다면 자신을 꾸짖든지 정부를 욕하라! 괜히 실눈 뜨고 노인들 째려보며 경로우대(警老愚待)하지 말라!’ ‘노인들이여, 복지혜택 받는 거 미안해 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당당하게 경로우대(敬老優待) 받으십시오!’

윤범상 울산대 조선해양공학부 명예교수 실용음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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