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영 전 정의당 울산시당위원장

회찬이 형! 형은 참 바보입니다. 그게 무어라고 목숨을 던집니까. 제 나라 백성을 무참히 살육하고도 사과와 반성도 없이 대대손손 호의호식하며 뻔뻔하게 살아가는 무리들도 있습니다. 손에 장을 지진다는 사람도, 할복한다는 사람도 자신들의 죄과를 뉘우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형은 바보이고,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좋은 집안에서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었는데 형은 고난의 길을 자청했습니다. 오로지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치를 지키고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사문화된 문장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은 것도 형이었습니다. 만명한테만 평등한 법은 법이 아니다는 형의 일갈은 사이다였고 오아시스였습니다.

물론 아직도 형의 바람과는 달리 여전히 법은 만명한테만 평등하지만, 형의 외침은 만인을 일깨우는 죽비소리와 같습니다. 형의 삶은 언행일치, 그 자체였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 말했고, 누구도 행동하지 않을 때 행동했습니다. 치열한 생존투쟁의 현장에는 언제나 형이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노동현장에서 감옥으로, 투쟁전선에서 국회로, 시시때때로 형의 자리와 위치는 바뀌었지만, 역할은 그대로였습니다. 변함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권력을 따르고, 이권을 쫓고, 영달을 찾아 하나 둘 떠나갈때도 형은 선산을 지키는 등굽은 소나무처럼 삶의 현장을 지켰습니다.

울산에도 형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골리앗 크레인에도, 철탑에도, 고가다리에도 형은 함께 있었습니다. 울산을 오가며 형과 나눈 술잔과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아직 못다한 술잔과 이야기도 많은데,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분향소에 놓인 해맑은 형의 영정사진을 보니 이것이 현실인지 믿기지 않습니다.

울산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형의 안타까운 죽음에 한마음 한뜻으로 애도하고 있습니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길고 긴 애도의 줄을 만들었고, 낮을 밤으로 이어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소위 고관대작이라는 사람도, 노동자와 장애인 등 모든 이들이 한줄로 서서 형의 영면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승을 떠나면서도 형은 사람 위에 사람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보같은 형이 오늘은 더 밉고 더 보고싶고 더 서럽습니다.

이제 오늘로서 형의 육신은 세상과 이별합니다. 형은 누굴 원망하랴며 자신을 책망했습니다. 괜찮습니다. 형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순결했고, 순수했고, 진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가길 당부했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의 멈춤은 다른 모든 이들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제2의 노회찬, 제3의 노회찬이 되어 형이 그토록 갈망했던 정의로운 평등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네가 죽으면 머리에 석남꽃을 꽂고 나도 죽어서’라는 형의 자작곡을 듣고 또 들으면서 오늘까지만 울겠습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머리띠 질끈 동여메고 당원들과 함께 새날을 여는데 가열하게 투쟁하겠습니다. 회찬이 형! 고마웠습니다. 잘 가십시오.

김진영 전 정의당 울산시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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