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
우리들 상식의 틀을 깨는 미술관이
울산에도 조속히 개관되기를 기대해

▲ 손진락 전 대한건축사협회 울산광역시회장

1998년 겨울, 너무 다른 성격의 남녀가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인정하면서 사랑을 이루어간다는 내용의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이 개봉되었고 독특하면서도 감성적인 제목과 시나리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미술관이 주는 이미지는 국적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감성적인 여유와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미술관이 인근에 있어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필자의 상상은 2020년 개관 예정이던 울산시립미술관의 건립이 최근 중단되면서 그저 상상에 머무르게 되었다. 어렵게 선정된 부지에서 문화재가 출토되고, 우여곡절 끝에 설계가 완료되었으나 시공사 선정 단계에서 미술관 건립이 중단된 것이다. 특히 부지선정에는 충분한 여론조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었을터인데 미술관 건립 추진과정에서 여론 수렴이 충분하지 못하였다는 결과로 중단된 것은 필자에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미술관(美術館·art museum, art gallery)은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한 문화유산이나 현대의 문화적인 유산을 수집·보존·전시하고, 문화에 관한 교육·보급·연구를 행하는 시설이다. 애초 미술관은 서구 귀족 사회의 전유물이었으나 이제는 사회에 필요한 감성을 충족시키는 시설물로서 인류에 이바지하고 있다. 미술관은 제도적 분류에서 박물관에 포함돼 역사, 예술, 민속, 자연과학 등에 관계되는 모든 자료들을 수집, 보관, 전시함으로써 교육적 배려하에 일반인의 이용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래서 미술관의 위치는 일반인이 가까이 하기 쉬운 장소로 선정하는 것이 원칙이며, 거주지역과 도심지의 중간지역이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과거에는 많은 미술관들이 도심에서도 광장이나 공원 내에 세워지고 있었으나 최근엔 일반인들의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서 대부분 도심지에 건립하고 있고, 도심지에서 소음이 적고 정숙한 녹지대, 공원과 같은 광장이 유리하며, 화재와 먼지, 가스 등의 피해를 입지 않는 위치가 감상자를 위한 환경으로 좋다고 한다. 이러한 조건으로 보면 현재의 울산시립미술관의 부지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미술관하면 어떤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지를 초월해 기존 미술관이 가지는 건축물의 한계를 뛰어 넘는 멀티적인 요소가 방문객의 숫자를 확연이 높이고 있는 추세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었으나 1989년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에이오 밍 페이가 설계한 유리 피라미드로 인해 건축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지금은 프랑스와 루브르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의 복합예술단지인 퐁피두센터에 위치한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탈리아의 렌죠 피아노와 영국의 리처드 로저스의 공동 작품으로 유리 건축물에 구조와 배관 등이 노출돼 있어 기존 파리의 도시에서 파격적으로 보인다. 두 미술관의 시기적인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오르세 미술관은 19세기 이후 근대미술 작품을 전시한다. 이러한 오르세 미술관은 190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호화롭게 건축된 역사(驛舍)는 20세기 초반까지 기차역과 호텔로 사용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폐쇄된 후 1970년대에 19세기 건축물의 가치가 재조명되어 역사미술관으로 활용 계획에 의해 리모델링하여 1986년에 개관된 미술관으로서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리고 필자와 같은 건축인들에게 대표적인 미술관은 뉴욕과 스페인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뉴욕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뉴욕의 일률적인 상자와 같은 건물 가운데 독특한 나선형태의 건축물로 설계하였다. 당시 뉴욕시 심의위원들은 나선형태의 건축물이 방화구획이 되지 않는다고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16년간 논쟁 끝에 설계를 완성하였고, 이 나선형 미술관은 전 세계 예술 애호가와 건축인, 학생들을 유도하는 구심점이 되어 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관 건축물이 되었다.

그리고 스페인 빌바오는 울산과 같이 조선업의 호황으로 가장 부유한 도시였으나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이를 최고의 관광도시로 새롭게 탄생시킨 것이 기존 분위기에 역행하는 새로운 건축형태였으며 그 중심에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다. 또한 우리 인근에는 있는 부산시립미술관은 루이스 칸이 설계한 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 있는 반원형 천정으로 유명한 킴벨 미술관에서 감명을 받아 이용흠 건축사가 설계하였으며, 빛에 대한 신비스러운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묘사하여 부산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어느 곳이든지 미술관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관람객이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를 판단하는 커다란 잣대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가끔 서울과 부산으로 출장 중에 한가람 미술관(예술의 전당)이나 부산시립미술관에 들러 좋은 작품을 보는 기회를 갖고 행복해하기도 하며, 외국 여행 중에도 꼭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과거 교과서와 옆서 등에서 봐왔던 유명한 작품과 독특한 건축 형태를 직접 보고 큰 감동을 받는다.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상식의 틀을 깨는 미술관이 우리 울산에도 조속히 개관되기를 기대해 보며 필자는 오늘도 ‘미술관 옆 건축물’에 사는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손진락 전 대한건축사협회 울산광역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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