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위원장의 국가주의논쟁 제기는
정치의 집단화과정을 도외시한 처사
공론화 거쳐 논쟁의 전선부터 형성해야

▲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국제관계학

고대 희랍의 철학자 플라톤은 <폴리테이아>(국가론)에서 철학왕(philosopher king)을 이상적인 지도자로 꼽았다. 수천년 전에도 정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엉망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의 현대 정치에서도 학자들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학자 출신이면서 노무현 정부 때 정책실장이었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국가주의’ 논쟁을 제기한 이후 정계에 미동이 이는 듯하다. 김 위원장은 국가주의의 상대적 개념을 ‘자율주의’로 주장하면서 국가가 시장과 시민사회에 너무 깊이 간섭하는 것을 국가주의로 보고 이를 비판하고 있다.

사실 정당이 이념적 지평에 따라서 갈리고 정치인들이 그들이 신봉하는 이념을 중심으로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일면 바람직스럽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국민을 향한 건전한 지지획득 활동으로서, 너절한 사연의 정쟁보다는 훨씬 건강한 경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뜬금없이 제기되고 지나치게 관념적이어서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내용이라면 과연 그것이 필요할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국가주의란 국가를 중심에 두고 국가가 사회 조직이나 집단 중 가장 우월하며 국가권력이 경제나 사회를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조를 의미한다. 국가주의는 야경국가론인 미나키즘(minarchism)으로부터 전체주의(totalitarianism)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사회주의로부터 국가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경제적 스펙트럼 또한 다양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사회나 개인보다 우월하고 국민주권론보다는 국가주권론에 경도되며 국가의 권위를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소위 ‘먹방’까지 규제하면서 시장에 일일이 간섭하고 국민들의 일상에 제한없이 관여하는 정부의 행태와 공무원 수를 늘이고 이를 통한 정부의 간섭의 강도를 강화하는 ‘큰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논거를 국가주의에서 찾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큰정부의 비효율성’을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것이 훨씬 간결하고 국민 여론에 대한 설득력도 더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주의의 상대적 개념은 ‘시장주의’이다. 시장이 갖고 있는 포괄적인 의미와 이미지, 즉 자유로운 진입 및 퇴장의 보장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결합으로서의 상징성이 전제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주의 논쟁 제기는 현 문재인 정부의 정책노선이나 이념적 성향에 대한 대안 제시로서의 의미가 충분할 것이며, 자유한국당이 갖는 대안정당으로서 보수정당의 이미지와 정책적 지향점에 대한 주장이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 논쟁이 김 위원장의 단독플레이가 된다면 그 의미가 퇴색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나 관념적 차원에서 아는 것을 실천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이를 집단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에서 김병준 위원장과 개념 정의나 언술체계를 공유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수 또는 당원들의 비율은 극소수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번 논쟁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화의 과정으로 연결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며, 그럴 경우 국가주의 논쟁은 빌 공(空)자 공론에 그칠 위험이 크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유’에 관한 훈련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소름끼치는 공허함과도 같다. 김 위원장이 생각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학습이나 천착을 통한 집단의식화의 과정을 먼저 치밀하게 추진하고 이를 공론화한 이후, 논쟁의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김주홍 울산대학교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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