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선사미술에서 브뢰이(Henri Breuil, 1877~1961년)만큼 큰 공헌자를 찾기는 어렵다. 동굴벽화를 불신했던 학계에 알타미라의 진실을 밝혔고, 20세기에 발견된 대부분의 동굴벽화가 그의 손을 거쳤으며, 수천 편에 이르는 많은 논문과 저서를 남겼다. 그를 ‘선사학의 교황(Pope of Prehistory)’으로 부르기도 한다.

브뢰이는 선사미술을 ‘사냥주술(hunting magic)’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사냥의 성공을 위해 유감주술(homeopathic magic)을 행하는 원시부족들처럼, 구석기시대 사냥꾼들도 성소라 여기는 동굴에서 이런 주술의식을 했었다고 보았다. 그들은 그림으로 현실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림이나 글씨로 쓴 부적(符籍)의 효험을 믿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사냥주술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창에 찔린 동물이나 짝 짓는 장면, 새끼를 밴 동물을 사냥감의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문자가 없는 사회에서 그림은 일종의 언어적 표현으로 생존에 필요한 지식을 초심자들에게 전수하는 역할도 있다고 했다.

델포트(Henri Delporte)는 동굴벽화에서 상처 입은 동물이나 사냥장면이 극소수라는 점을 지적했다. 동물고고학 분석에 따르면, 순록은 구석기시대 가장 주된 사냥감(70%이상)이다. 그러나 동굴벽화에서는 매우 적은 비중(4% 미만)을 차지한다. 또 동굴 곰이나 사자처럼 사냥이 불가능한 동물들도 있다. 사냥주술로 선사미술을 일반화하기에는 이론적으로 많은 허점이 있다. 브뢰이 사후, 과학적 분석(통계학)과 이론(구조주의)으로 무장한 연구자들에 의해 사냥주술은 고전(古典)이 되고 말았다.

반구대암각화도 예외는 아니다. 브뢰이가 말한 동물을 사냥하는 장면, 짝 짓는 모습, 새끼 밴 동물 그림이 있다. 그러나 동물종류만 헤아려도 20종이 넘는다. 지금까지 발견된 세계 모든 동굴벽화와 바위그림을 통틀어 가장 많은 동물 종이 표현된 유적이다. 이론적으로 접근하면 한없이 복잡하고 난해해질 수밖에 없다. 보통 사냥감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브뢰이를 선사학의 교황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상목 암각화박물관 관장·고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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