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적 관념에 과학·법률 경시됐지만
추리물이 과학지식 대중에 널리 전파
증거재판 근대 사법체계 확립에 일조

▲ 황보승혁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연일 최고기온을 갈아치우는 폭염이 한달 가까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얼마나 더운지 계곡과 해수욕장 등 피서지도 텅빌 정도라고 한다. 이럴 때는 그저 집안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TV의 납량특집을 보거나 추리소설을 읽는 것도 더위를 견디는 한 방법이리라. 납량특집하면 <전설의 고향>이 떠오르겠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 따라 ‘카도집’에서 보았던 <수사반장>도 그에 못지않게 무서웠다.

흑백화면 가득 채우는 기괴한 지문 모양을 배경으로 사람 그림자와 제목이 박히면서 쇳조각 끌리는 듯한 느릿한 관악기의 불협화음이 흘러나오다가 갑자기 톱니바퀴 선명한 수갑이 클로즈업 되고 음악이 점점 빨라지면서 심장을 죄어오는 급한 타악기 소리와 함께 ‘빠바바바밤, 빠바바바밤…’하고 주제곡이 절정에 이를 때쯤이면 이미 내 머리는 할머니의 무릎팍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리곤 십중팔구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 잠이 들었다가 할머니 등에 엎혀 집으로 돌아와 모기장 쳐진 방안에 눕혀질 때쯤 다시 깨어나 머리 속에 남아있던 드라마 장면 때문에 등줄기가 서늘해지곤 했다.

그때는 어른들이 왜 이런 드라마를 즐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수사물이라면 미국, 일본 등 국적을 불문하고 찾아보게 된지 오래다. 요즘 가장 즐겨보는 수사물은 일본 드라마 <파트너(相棒)>이다. 도쿄대학 법학부 출신의 통찰력과 분석력은 엄청나지만 괴팍한 성격과 돌출행동으로 출세길이 막힌 형사 스기시타 우쿄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와 파트너가 된 형사와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인데, 2002년 시즌 1이 시작된 후 올해까지 16년간 방영되고 있으니 가히 일본판 <수사반장>이라 하겠다.

과학적 지식과 논리적 추론으로 범죄를 해결하는 수사물 또는 추리물은 증거재판의 근대적 사법체계가 확립되고, 과학지식과 방법론이 대중교육을 통해 일반에 보급된 근대사회의 산물이다. 미신과 주술에 의존하면서 자백할 때까지 고문이 허용되는 사회에서 추리물은 설 땅이 없다. 오귀스트 뒤팽, 셜록 홈즈, 에르퀼 푸아로 등 세기의 명탐정들이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나 프랑스를 배경으로 탄생하고 활동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추리물이 보급되고 유행한 시점도 근대화와 관련이 깊다. ‘모던 보이(걸)’들이 경성 거리를 활보하던 1930년대를 전후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추리소설이 등장하였고,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등 외국 유명작가의 추리소설이 번역되기 시작했다. 여러 민간설화 속의 암행어사 박문수가 탐정 비슷한 역할로 재탄생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후 ‘조국 근대화’의 기치가 전국을 뒤덮던 1970년대에 추리물은 다시 유행하게 된다. TV에서는 <수사반장>이 전파를 타고, 출판계에서는 ‘동서 추리문고’, ‘삼중당 추리문고’ 등 문고판 추리소설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우리 근대화의 억압적 성격과 국민의식 아래 뿌리깊게 자리한 유교적 관념으로 인하여 과학은 우리사회에서 맡은 역할에 비해 경시되어왔다. 법률 역시 마찬가지이다. 추리소설이 한낱 점잖치 못한 통속물로 치부되고, 유신 한해전인 1971년 시작한 <수사반장>이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1989년 종영된 것도 비단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무위자연’과 ‘약법삼장’의 농촌공동체적 이상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버린 현재 과학과 법률이 우리사회를 지탱하는 두 기둥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면에서 요즘 TV에서 우리 추리물들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개인적인 기호를 떠나서도 너무나 반가운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수사반장>이나 <파트너(相棒)>처럼 10년 이상 롱런하는 수사 드라마가 얼른 나오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려나….

황보승혁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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