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태풍 물러갔지만 서민시름 여전
갑갑한 국민들 속 달랠 시원한 정책
더위 물러난다는 처서를 보내며 기대

▲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장기간 이어졌던 기록적인 폭염도 처서(處暑)가 지나니 한풀 꺾여 수그러지는 기세가 완연하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의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도 있지만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 앞에서는 숙연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위를 이기는 나만의 비결이 있다면 다름 아닌 ‘속대발광욕대규(束帶發狂欲大叫)’라는 당나라의 시인 두보의 시구를 진언처럼 암송하는 것인데, “삼복더위에 점잖게 의관을 정제하고 앉아 더위를 참으려니 미칠 것 같아 큰소리로 부르짖고 싶다”는 뜻이라니 책을 보며 더위를 견디던 선비들의 피서, 즉 극서의 모습이 상상으로 다가온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시끄러운 세상을 애써 외면하며 참고 견뎌야하니 아직은 이 진언을 놓을 시기가 아닌 듯도 하다.

폭염과 태풍은 물러갔지만 전기요금 폭탄과 채소, 과일값 폭등으로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가는 가운데 올 추석 물가는 또 얼마나 오를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는 소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농인과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생산자들도 작황과 불경기, 인건비 등으로 애가 타기는 매한가지인데 정작으로 하소연할 데가 마땅치 않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도는 삶의 질을 높이는 좋은 정책이라는데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통해 나중에 더 많이 주겠다는데 당장의 연금 납입부담은 물론 수급 시까지 견딜 일이 걱정이다. 그동안 폭염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든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기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을 잘 살아가는 방법을 물어보니 ‘비우기’와 ‘버리기’ 그리고 ‘참기’라고들 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과 ‘욕심을 버린다는 것’ 그리고 ‘참는다는 것’은 모든 가르침에서 빠짐없이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로 매우 중요한 만큼 실천하기가 어려운 만인들의 숙제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법이나 권력 또는 재력 앞에서 능력이 모자라니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었고, 용기가 부족해서 욕심을 낼 수도 없었거니와 가진 힘이 없다보니 늘 참고만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현실은 더 비우고 버리고 계속 참기만을 압박하니 마치 숨 쉬는 것을 참으라는 듯해 100세까지 산다고 해도 살아갈 일 자체가 걱정이다.

작년에 돌아가신 친구 아버님은 단청기능보유자로 평생을 새벽에 일어나 목욕재계로 하루를 시작하셨다고 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몸을 깨끗이 하고 명상으로 마음을 닦으신 분이라 99세까지 장수를 누리신 듯하다. 고등학생 시절에 다리를 다쳐서 그 분께 침을 맞은 적이 있었는데 지레 겁이 나서 벌벌 떨며 얼굴부터 찡그리는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 “병을 고치려면 아파도 참아야 하느니라.” 덕분에 다리의 통증도 씻은 듯 사라지고 늘 그 말씀을 간직하게 되었다. “찬물로 목욕하고 명상으로 마음을 비우고 식탐과 물욕을 갖지 마라”시던 생전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는 오늘이다.

요즘 정치나 나랏일이 무척 힘든 모양이다. 협치와 소통을 강조하는데도 ‘엇박자 정책’이니 ‘불협화음’이니 하는 것을 보면 ‘비우고 버리고 참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도 사사로운 마음이나 욕심이 있다면 버리고 답답한 국민들은 해법이 나올 때까지 더 참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를 보내며 ‘시원한 정치와 정책’을 기대해 본다.

김종국 서울교통공사 서비스안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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