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조절로 가닥 지어진 암각화 보존
순서 바꿀순 있어도 맑은물 포기 안돼
반구대2·국립박물관 설립도 얻어내야

▲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울산시가 사연댐 수위를 낮추기로 했다고 한다. 사연댐 수위 조절은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보존 방안의 하나다. ‘제방 설치’를 주장하던 울산시가 입장을 바꾸어 문화재청의 ‘수위조절’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아직 울산시의 공식적 발표는 없었다. 송철호 시장이 지역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얼핏 밝혔고, SNS에도 떠돌고 있다. 이미 문화재청에도 그 뜻이 전달된 모양인데, 문화재청도 아직은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울산시와 오랫동안 대립적 관계를 갖고 있었던지라 반대여론을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뭔가 울산시민들이 납득할만한 보상을 마련하기 위해 발표를 유예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을 둘러싼 논란은 벌써 십수년째다. 사연댐 내에 있는 암각화가 물에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함에 따라 훼손이 가속되므로 물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다. 최선의 방법은 정부가 운문댐이든 다른 어떤 물이든 울산에 맑은 물을 공급할 확고한 방안을 확보한 다음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여의치 않다. 지역간 이해관계라는 높은 벽 때문이다. 대안은 문화재청이 요구하는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것과 울산시가 주장하는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는 두가지로 나뉜다. 어느 한쪽도 완전하지 않다. 사연댐 수위를 낮추자니 울산시민들의 유일한 식수원이 대폭 줄어들어 맑은 물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 제방을 쌓자니 유적의 주변 환경이 변질돼 가치가 훼손된다. 어디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대립이 극렬하다. 지금은 임시처방으로 수위를 낮추어 댐운영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가뭄이 심각했던 지난해 식수 전량을 낙동강물로 해결하면서 반발이 일기도 했다.

지방정권이 바뀐만큼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맑은 물 공급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사연댐 수위를 낮추는 결과를 얻어내기가 요원하므로 순서를 바꾸어보겠다는 것이 송시장의 생각인 듯하다. 후보시절부터 복안을 제시하는 관심을 보였고 현 정부와도 소통이 잘 되는 그이기에 믿고 맡겨보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송시장이 일방적으로 문화재청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할 일은 아니다. 그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절차가 있다. 바로 ‘시민들과의 소통’이다. 논란이 극렬했던만큼 새로운 정책적 결정을 내리려면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다. 어떤 결정을 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그 결정이 울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울산시민들에게 먼저, 충분히, 공식적으로 알려야 한다. 어물쩍 넘어가서는 안될 일이다.

‘맑은 물’에 상응하는 정부의 보상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하다. 다양한 여론수렴이 필요하겠으나 우선 반구대~천전리 일대가 울산의 상징적·역사적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자연친화적 사적공원으로 조성하는 일을 문화재청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 공간 속에는 반드시 ‘반구대 Ⅱ’가 필요하다. ‘반구대 Ⅱ’는 대곡천 일대에서 반구대암각화가 있는 지역과 비슷한 곳을 찾아 반구대암각화를 그대로 재현한 것을 말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물에서 건져내는 것으로 영원히 보존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풍화작용을 줄여 훼손을 감속할 뿐, 자연상태에 있는 바위가 영원불변할 수는 없다. ‘반구대 Ⅱ’는 암각화의 보존과 계승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한 방법이다.

암각화 연구와 보존, 전시와 홍보 기능을 갖춘 ‘국립암각화박물관’도 설립해야 한다. 지금의 암각화박물관 자리가 아니라 KTX역 근처 또는 언양~경주 국도변이면 좋을 것이다. 식수를 양보할만큼 중요한 세계적 문화유적이라면 그 관리와 연구에 국가가 나서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물론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울산의 맑은 물 공급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대책 수립이다. 일처리의 순서를 바꿀 수는 있으나 ‘맑은 물’은 포기할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정명숙 논설위원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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