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합창지휘박사

연주하는 일이 직업이라 우리나라 방방곡곡은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연주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나라, 많은 도시, 많은 연주회장에 가서 정말 많은 연주를 하였다. 그 중 홍콩 연주는 특별한 이유로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다. 많은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씩 그 때가 떠오르며 스스로를 다잡는 계기가 되곤한다.

사연인즉, 홍콩에서의 연주 장소는 계획된 대로 첫째날은 음악회장에서, 둘째날은 야외 공연장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다. 첫날 음악회장에서 연주하는 날은 하늘도 맑고 날씨도 좋아서 차질 없이 잘 진행됐다. 문제는 야외 공연이 계획된 다음날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왔다. 연주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내심 단원들 모두 숙소에서 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지 합창공연 관계자는 우리 합창단에게 공연 준비를 하라고 하더니 버스에 태워 야외공연장까지 가서 언제든 공연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 태세로 기다리게 했다. 공연시간이 지나도 비가 계속 내리니까 그때서야 공연 불가 결정을 내리고 우리를 다시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당시 담당자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숙소에 있을 때 그 야외 공연장에는 비가 멈출 수도 있다. 관객이 한 분이라도 와 있었다면 우리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 관객에게 용서 받을 수 없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시간에 우리는 공연 준비를 하고 현장에 가서 기다려야 한다.”

태풍의 계절이다. 어떤 태풍은 세찬 비와 강풍으로 우리나라를 뒤흔들어 놓기도 하고 어떤 태풍은 얌전하게 물러가기도 한다. 어느 태풍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여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줄지 예측이 어렵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예측이 빗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관찰하고 미리미리 대비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 밖에 없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았든지 개인의 편의 위주로 판단하거나 섣부른 결정을 해서도 안 된다. 각자의 책임아래 자기의 일생이 달려 있는 중요한 일로 생각하여 최선을 다하면 모든 사람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고 행복하리라. 구천 전 국립합창단 예술감독·합창지휘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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