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상봉 경쟁률 569대 1
상봉 대기자 5만6천여명 대부분 고령
만남 정례화와 함께 서신교환 검토를

▲ 홍두화 대한적십자사 울산혈액원장

지난 8월 20일, 금강산으로 떠나는 남측 최고령자인 101세 백성규 할아버지의 짐 꾸러미는 무거워 보였다. 여름·겨울옷부터 시작해 내의, 신발 30켤레, 치약, 칫솔 등 며느리와 손녀를 주기위해 챙긴 물건의 양은 65년 세월의 무게도 함께 실은 듯 했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몇 번 신청을 했으나 이번에서야 연락을 받게 된 백성규 할아버지는 “이번 만남이 마지막이라고 생각돼 없는 것 없이 다 샀다”고 말했다. 처음의 담담한 모습과는 다르게 실제 만남에서는 며느리와 손녀를 꼭 껴안고 지나온 세월만큼의 깊은 눈물을 쏟아내었다.

남북 정상이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하였고, 8·15 광복절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 최종 대상자 명단을 교환하면서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개최되었다. 2015년 10월 이후 2년10개월 만에 개최된 행사였기에 그 상징적 의미는 더욱 컸다. 실시간으로 방송된 이산가족 상봉행사의 준비과정부터 실제 만남, 작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에 온 국민의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 쏠렸다.

TV속 영상을 보며 가족의 애잔한 모습에 같이 눈시울을 붉힌 대다수의 국민들과 다르게 또 다른 의미로 이산가족 상봉을 바라봤던 분들이 있다. 바로 이번에 당첨되지 못한 신청 대기자들인데, 그분들에게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 소식이 희망고문과 다름없었다. ‘살아서 만날 수 있을까?’ 기대감으로 평생을 사셨던 분들이지만 65년간 21차례의 기대는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향후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도 선정이 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가운데 속절없는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흘러가는지….

이번 제21차 상봉 행사의 최종 경쟁률은 569대1이었으니, 1명의 가족 상봉 장면을 보고 아직 만나지 못한 5만6000여명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현재까지 대한적십자사에 상봉 신청한 총 13만2603명 가운데 7만5741명이 돌아가시고 현재 약 5만6862명만 살아계신다. 그 중에서도 80세 이상의 고령 신청자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점점 부부, 형제자매 상봉이 줄고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이산가족의 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지난 65년간 단 21차례 만남, 4000여 가족의 상봉에 그쳤다. 기존에 상봉 행사에서 만남을 가졌던 가족들의 재상봉은 말할 것도 없고 서신을 통해 생사를 확인하고 안부를 묻는 일도 현실화 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한반도 정세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지만 앞선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 등 남북관계에 전례없는 훈풍이 부는 지금, 9월에 있을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의 확대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이산가족 문제는 정치적, 이념적 차원을 넘어서 인도주의 차원에서 다뤄져야할 것이다. 그 방법에는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서신 교환 및 영상을 활용한 접촉 등 다양한 방법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시작으로 대한적십자사도 북한적십자회와 더욱 활발히 협력해 대북 교류 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과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보건의료 인프라 구축사업 지원을 준비하는 적십자사는 남북화해의 길에 일조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향후 남과 북의 신뢰구축 및 관계 개선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를 계기로 단기적으로는 상설면회소 설치를 통해 전쟁으로 헤어진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생전에 수시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장기적으로는 남북한 7500만 겨레가 마음껏 왕래할 수 있는 그 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홍두화 대한적십자사 울산혈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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