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다양나연作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누군가의 무엇이 되고 싶다.

둑길에서 뺨을 스치는 바람결을 느끼며 울컥, 설움이 몰려왔다. 병실을 지키는 어머니는 들녘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을 언제쯤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추억이 서린 곳에선 함께했던 순간이 그리워진다.

삼 주 동안 병실 밖을 나갈 수 없었던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에서 하늘을 볼 수 있고,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작은 정원으로 갔다. 산 위에 가뿐히 앉은 듯한 새하얀 뭉게구름, 진분홍 꽃이 핀 작다란 배롱나무 몇 그루, 태생부터 물이 든 홍단풍 서너 그루가 우리를 반겼다. 비둘기들이 뙤약볕에 지친 듯 거대한 병원 건물에 깃들어 날개를 접고 있었다. 힘들다고 휠체어를 타기 싫다던 어머니께서도 꽃송이가 흔들릴 때면 바람이 분다며 좋아하셨고, 멋을 내서 쌓아 올린 돌담을 보며 “참 잘 쌓았제.”라며 감탄하셨다. 오랜 병원 생활에 무뚝뚝하던 엄마의 태도도 어느새 누그러졌다. 며칠 전 둑길에서 느꼈던 설움이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어디선가 매미 소리가 들리고 햇살과 바람이 피부를 간질이는 곳. 작은 공간에서나마 자연을 느낄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병실로 돌아왔을 때 간호사가 옆 침대에 환자가 들어올 거라고 했다. 의식이 없어요. 스치듯 낮게 덧붙였다. 병실에 있다 보면 다양한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게 되고 옆에 들어오는 사람에 따라 예상치 못한 불편을 겪기도 한다. 조금 후 어머니보다 더 많은 줄과 보조기구를 단 환자가 옆 침대에 들어왔다.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보호자와 함께였다. 안녕하세요? 예의를 차린 인사 속에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을 담고 있었다. 침대 위의 여자는 눈을 치뜬 채였으나 눈동자에 초점이 없었다.

두남자는 입실 절차가 끝나자 당연하다는 듯 “점심 좀 먹고 오겠습니다.” 하고는 밖으로 나갈 채비를 차렸다. 아직 친밀감이 생기지 않은 나는 내심 당혹스러웠지만 “네.” 하고 대답했다. 어머니 상태가 걱정돼 병실 안에서 밥을 먹는 게 습관이 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머니 식사를 드린 후, ‘햇반’을 데워 김과 무말랭이 김치로 간단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그날따라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평소에 못 들어본 기계음과 숨소리, 대책 없이 떨리는 그녀의 팔 때문이었다.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밥을 밀어 넣으면서 먹는 일이 이렇게 힘들 수도 있구나 싶었다.

점심을 먹고 나자 옆 환자의 남편만 병실로 돌아왔다.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은 남자는 안경을 끼고 있었고, 적당한 키에 곱게 생긴 얼굴이었다. 70대 초반인 남자는 부인이 쉰한 살에 치매가 와서 12년째 간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엔 유방암에 걸려서 수술까지 받게 했다며 말간 얼굴로 아내를 쳐다봤다. 가까운 친척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는 남자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존경심이 들었다. 어디가 불편한지 살피는 그윽한 눈길, 간호하는 세심한 손길, 대답을 기대하지 않지만 아내에게 건네는 속삭임 같은 말. 나는 남자의 그런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평소에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열부상이 있으면 드려야 할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만큼 내 마음속 경계심은 풀려가고 있었다.

서로 고향을 묻다 보니 같은 동네 출신임을 알게 됐다. 스무 살 정도 차이가 나서 서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인연이 다 있냐며 서로 신기해했다. 나는, 남자는 몰랐지만 그 마을에 오랫동안 살았던 부모님은 알고 있었다. 그 부모님의 넓은 집에는 담 경계를 넘은 단감 몇 주가 있었고, 넓은 뒷간에는 커다란 살구나무가 있었다. 가지가 축 늘어져 누렇게 영근 단감은 개구쟁이 아이들의 서리 대상이었다. 담장 너머로 떨어진 살구를 주워 먹은 기억이 내게도 남아 있다. 어린 눈으로 봤을 때 그 집은 부자였다. 남자는 집이며, 논이며, 자식이 팔아먹었다고 소문난 Y댁 아들이었다. 속으로 그 돈을 병원비로 썼나 싶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것 또한 편견임을 알게 됐다. 사업하다가 잘못되고 사기를 당해서 고향집과 논을 팔았다고 했다. 세상은 어수룩하고 착한 사람보다 약삭빠른 사람이 살기에 수월하게 변한 것 같다. 부부가 식당을 오래 해서 번 돈을 병원비에 쏟아붓고도 아저씨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환자의 얼굴이라기엔 너무나 깨끗한 여자를 보면 남자의 노고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됐다.

돈이 가치를 삼키는 세상에 보기 드문 순애보를 접하고 보니 그동안 소문으로 듣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얼마나 피상적인가를 깨달았다. 작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 돌보는 마음을 가진 남자라면 그가 산 흔적이 결코 가볍거나 혼탁하지 않았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름답고 귀한 마음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

오랜 폭염 끝에 단비가 내린다. 시들어가던 호박잎이 빗물을 머금고 다시 푸릇푸릇해졌다. 초목이 비를 맞고 간들거리는 푸른 들판, 화려한 꽃무늬 우산 하나 받치고 어머니와 저 빗속을 걷고 싶다.

▲ 정정화씨

■ 정정화씨는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5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소설 ‘담장’ 당선
·201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고양이가 사는 집’ 당선
·2016 신예작가에 ‘쿠마토’ 선정 수록
·2017년 소설집 <고양이가 사는 집> 출간

 

 

 

 

 

▲ 양나연씨

■ 양나연씨는
·대구대 예술대학 조형예술학 석사 졸업
·박물관·미술관 학예사 자격 소지
·개인전 3회, 단체전 다수
·대구미술대전, 울산미술대전 외 30여회 수상
·울산한국화회등 회원, 혜윰 갤러리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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